법원이 수사기록 공개를 허용키로 결정했는데도 검사가 변호인의 열람ㆍ등사 신청을 거부한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최근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빚어진 법원과 검찰간 공방에서 법원이 판정승을 거둔 셈이어서 향후 형사재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헌재는 24일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등이 청구한 열람ㆍ등사 거부처분에 관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8(위헌) 대 1(각하)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변호인의 수사서류 열람ㆍ등사권은 피고인의 신속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실현하는 수단"이라며 "검찰이 법원의 수사기록 공개 결정에 따르지 않는 것은 이 같은 피고인의 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라고 밝혔다. 이어 "형사소송법에서 수사서류의 열람ㆍ등사에 관한 법원의 결정을 검사가 이행하지 않을 때 이를 증거로 신청할 수 없는 불이익을 준 것은,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기만 하면 법원의 결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이 위원장 등은 지난해 3월 용산참사 재판 도중 검찰에 미공개 수사기록 열람ㆍ등사를 신청했다 거부당하자 1심 재판부에 열람ㆍ등사를 허용해달라고 신청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검찰은 "사건 관계인의 명예, 사생활 비밀, 생명ㆍ신체의 안전이나 생활의 평온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열람ㆍ등사를 거부했고, 수사기록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1심 판결이 선고됐다. 올해 초 용산참사 진압경찰 등의 불기소처분을 다투는 재정신청 사건까지 맡은 2심 재판부는 검찰에서 넘겨받은 수사기록의 열람ㆍ등사를 변호인에게 허용했고, 이에 검찰이 재판부 기피신청으로 맞서면서 법ㆍ검 갈등으로 비화했다.
사태가 이처럼 악화한 것은 관련 법 조항에 대한 법원, 검찰의 해석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266조 제4항은 검사가 법원의 기록공개 결정을 지체없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해당 기록에 대한 증거신청을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를 두고 검찰은 해당기록을 증거로 신청하지 않는 '불이익'만 감수하면 기록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했다. 반면 법원은 검찰이 법원 결정을 따르는 것은 의무라고 주장했다. 이날 헌재의 결정은 법원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앞으로 검찰이 수사기록을 선별해 유리한 것만 공개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다.
조은석 대검찰청 대변인은 "헌재의 결정대로 앞으로 형사재판에서 법원의 결정이 있을 경우 증거로 제출되지 않은 수사기록도 공개할 예정"이라며 "다만 수사기록엔 개인의 명예나 수사기밀이 포함돼 있을 수 있어 공개로 인한 부작용도 충분히 고려하여 결정돼야 하며, 즉시항고 등 이의제기 절차도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위헌의견을 밝힌 이동흡 재판관도 보충의견을 통해 "수사서류 열람ㆍ등사의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검찰에 집행정지 효과가 있는 '즉시항고'를 허용해주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헌재 관계자는 "변호인이 검찰 수사기록을 변론에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공판에서 검찰과 대등한 위치에서 실질적인 공방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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