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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의 미디어 비평] 언론 배타적 기득권에 메스 댄 '일본판 노무현'의 퇴장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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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의 미디어 비평] 언론 배타적 기득권에 메스 댄 '일본판 노무현'의 퇴장을 보며

입력
2010.06.2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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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일본 총리가 지난 8일 사임했다. 사임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이 따라 붙는다. 인기가 천당에서 지옥으로 오르내렸으니 의견이 분분할 밖에. 대체로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 실패를 으뜸 원인으로 꼽는다. 미국, 자국민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었지만, 특히 오키나와 주민으로부터 외면당한 것이 결정적 타격이었다. 말 바꾸기 대장, 거짓말쟁이로까지 알려져 자리에 버티고 있기가 어려워지자 돌연 사임을 발표했다.

그런데 하토야마 사임을 그렇게만 정리할 경우 잃는 정보가 많아진다. 이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세계체제론의 창안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하토야마 정권의 이면을 읽을 것을 권유한다. 월러스틴은 하토야마 총리의 미국 벗어나기를 우연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으로 본다. 앞으로 누가 일본 총리가 되더라도 미국 벗어나기는 지속될 거라 주장한다. 미국 헤게모니의 약화로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월러스틴은 일본이 한국, 중국과 함께 아시아 블록을 만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새로운 아시아 평화체제를 구축할 거라 예상했다. 미국 벗어나기에 성공한 유럽을 반복할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제동을 거는 기득권 세력을 만나 잠깐 주춤거릴 거라고 내다보았다. 재벌, 관료, 계열화된 미디어가 분명 딴지를 걸 거라고 점쳤다.

월러스틴의 예언은 하토야마에겐 저주가 되었다. 하토야마는 재임기간 내내 언론에 시달렸다. 허니문 기간조차 갖지 못했다. 산케이, 요미우리 등 보수 언론이 비판에 앞장섰으나 마이니치, 아사히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토야마도 여러 번에 걸쳐 언론에 불만을 토로했다. 퇴임하는 날 기자회견도 없이 수상 관저를 떠난 것도 그런 탓이다.

하토야마는 애초 그의 정책을 언론에 최대한 개방해 국민적 공감을 얻으려 했다. 그래서 주요 언론만 취재를 독점하던 시스템인 기자클럽 제도를 없앴다. 인터넷 언론, 군소 언론에도 취재 기회를 부여했다. 취재 관행을 완전 바꾼 셈이다. 이후 몇몇 장관실도 기자클럽 제도를 없앴다. 개방을 구실로 메이저 언론의 기득권을 없앤 조처였다.

하토야마 내각은 일본 방송 구조 변화에도 손을 댔다. 미국 FCC와 같은 독립 방송행정기구를 만들겠다며 준비를 해왔다. 그 시도로 일본 방송계의 반발을 샀다. 신문, 방송 겸영을 하고 있는 일본 미디어 계열에 변화를 주기 위해 방송법 개정까지 고민했으니 용감했다고 할 밖에. 이처럼 일본 미디어 계열의 배타적 독점권에 메스를 댔으니 되돌아온 답은 뻔하지 않은가.

일본 언론은 하토야마를 임기 내내 이상하고, 무능한 인물로 소개했다. 퇴임 뒤엔 더더욱 그랬다. 하토야마가 품었던 탈미 아시아 블록 형성 구상을 치기어린 정치인의 시도로 묘사했다. 언론은 하토야마를 언급하면서 방송법이나 기자클럽의 이야기는 아예 입에 올리지 않았다. 눈 앞의 제 몫 챙길 목적으로 정치과정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변화를 거부하며 기득권을 지키려 한 정치적 행위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을 것이고.

일본 언론으로부터 하토야마는 '노무현'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보수언론은 그에게 이명박 대통령을 배우라는 훈계도 덧붙였다. 미국으로부터 벗어나지 말며, 새로운 아시아 블록 등을 꿈꾸지도 말고, 예전처럼 가라고 주문했다. 일본의 재벌, 미디어 계열체, 관료가 누려온 55년 체제 복구를 요청한 셈이다. 일본 국민의 80%이상이 아직도 신문을 가장 신뢰한다고 하니 어떤 여론이 형성되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일본 언론과 어긋났던 하토야마는 낙마했고, 일본 언론은 성공했다.

하토야마 내각의 낙마는 약이 될까, 독이 될까? 차차 밝혀질 일이지만 일본은 일단 변화를 거부했다. 바뀌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구체제로 돌아가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일본 언론이 큰 역할을 했다. 정책 대상인 언론이 정책 주체로 우뚝 선 셈이다. 정치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위태스러워 보인다. 이웃해 있어선지 참으로 자주 서로 기시감을 주고 받는다.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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