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전임자의 근로시간면제 제도(타임오프)를 놓고 많은 사업장이 전쟁 국면에 빠진 것은 자기 이익에만 눈이 어두운 한국의 전근대적 노사 문화를 잘 보여 준다.
노조전임자 문제가 조합원과 직접 연관된 사안이 아닌데도 자기 밥그릇에만 집착하며 투쟁을 강요하는 노조 간부들과, 시행일을 넘겨 어떻게든 이번 상황을 모면하려는 얄팍한 회사 모두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안일하게 대처하고 노사 갈등 중재에도 적극적이지 않은 노동부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노조전임자 밥그릇 싸움
이번 싸움은 타임오프 시행에 따라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노조전임자들의 위기의식이 동력이 되고 있다. 특히 정부고시 타임오프안이 하후상박을 원칙으로 결정됨에 따라 조합원 500명 이상의 대규모 노조가 타격이 크다. 기아차노조와 GM대우차노조의 경우 전임자를 각각 181명에서 18명으로, 91명에서 14명으로 줄여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이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의 완성차 노조가 7월 투쟁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기아차노조와 GM대우차노조는 각각 24, 25일과 28, 29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다.
사 측은 노사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1일을 넘기면 노조전임자 수가 줄어드는 새로운 제도에 따라 협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유리하다. 그래서 버티기 전략으로 나선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민주노총 배제
정부 고시안을 노동계의 주요 축인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의결한 것도 문제를 키웠다. 사건의 시발은 4월 30일 밤 12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 관련 부칙(2조2항)은 타임오프 의결을 4월 30일까지로 못박았는데도 근면위는 시한이 넘도록 이를 통과시키지 못했다.
결국 근면위는 5월 1일 오전 2시55분께 민주노총 추천 노동계 위원 2명을 노동부에서 투입한 근로감독관들이 물리력으로 제지하는 가운데 타임오프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민주노총은 협상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고, 타임오프 분쇄 파업과 사업장 단위별 노사 협상을 통한 무력화 투쟁에 나섰다. 이 같은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은 합의 기구인 근면위의 당초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노동부의 헛발질
노동부의 헛발질도 타임오프를 둘러싼 갈등을 심화했다. 노동부는 이달 3일 타임오프 매뉴얼을 제시하면서 시행일 이후 단체협약에 합의한 사업장에 대한 명확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노사가 각각 시행일 전과 후를 목표로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또 복수노조 사업장에 대한 타임오프 적용 방법도 불명확했다. 이 때문에 조종사노조와 일반직원노조가 따로 있는 대한항공노조의 경우 노조전임자를 별도로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화가 난 민주노총은 "매뉴얼은 해석에 불과해 법적 효력이 없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할 방침이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노사가 단협에서 지정한 대상 외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사업주는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금속노조 파업에 대해서도 노동부는 "불법이니 형사고발하겠다"는 처벌자로서의 태도를 고수하고 있을 뿐 중재자로서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
한편 금속노조는 24일 노조전임자 수를 현행 수준으로 노사가 합의한 사업장이 현재 노사 협상을 진행 중인 사업장 170곳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85곳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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