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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산보에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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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산보에의 초대

입력
2010.06.2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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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초여름의 은현리를 저와 함께 걸어보시렵니까? 이것을 '산보'라고 해도 좋고 '마실'이라 해도 좋습니다. 은현리에 주소를 둔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은현리에서 저는 잃어버린 것도 많지만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은현리가 저에게 따끔하게 가르쳤지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욕심 없이 살아라, 고. 그래서 세상의 방식과는 다른 은현리의 시작을 당신에게 보여주려 합니다. 우리는 흔히 한 마을을, 관문인 길의 입구에서 쉽게 찾으려 합니다. 승용차를 타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찾아가는 은현리가 아니라, 물길을 따라 가서 자연스레 만나는 낮고 평등한 은현리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천성산과 솥발산 사이로 흐르는 맑고 아름다운 계곡 운흥동천(雲興洞天)에서 은현리의 물길은 출발합니다. 그 물길 곁에 제가 자주 찾아가 시를 읽는 나무벤치가 있습니다. 봄에는 새잎이 눈부시고 여름에는 그늘이 좋고 가을에는 낙엽이 향기로운 곳입니다.

벤치에 앉아 당신도 좋은 시 한 편 읽어주고 가시지요. 제게 시는 자연의 선물이라 자연에게 그 시를 되돌려줍니다. 자연의 시에는 자연이 화답하는 법입니다. 물이 흐르다 잠시 멈추어 서서 해맑은 얼굴로 반짝이며 시를 듣고 갑니다. 저쯤 옹달샘이 있을 것입니다. 목이 마르시다면 물 한 잔 마시고 오시죠. 물에 비치는 당신의 얼굴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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