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4년마다 하는 수학 공부가 있으니 '경우의 수'다. 사실 수학처럼 비대중적인 분야도 없다. 학창시절에 수학을 잘한 사람보다는 못한 사람이 더 많고, 즐거워한 사람보다는 두려워하거나 싫어한 사람이 훨씬 많다. 하지만 월드컵 조별리그 때만은 너도나도 수학천재인 양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것이다.
뭐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네 팀이 이미 두 경기씩 치르고 한 경기씩만 남은 상태에서 2위 안에 드는 경우의 수를 구하기 쯤이야. 생명공학, 도박, 신종플루, 떡값, 장동건 고소영 결혼, 잠수함 등 분야와 난이도를 가리지 않는 전 국민적 집단공부에 이골이 난 우리에게 만만한 콩떡 같은 문제다.
왜 우리는 늘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느냐, 지긋지긋하다고 분개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분개할 일까지는 아니다. 두 경기만 치르고 2위 이상을 확정짓기는 몹시 어렵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두 경기만 치르고 2등 이상을 확정지은 것은 네덜란드와 브라질 단 두 팀뿐이잖은가.
네 팀이 물고 물리기 마련이고 마지막 경기를 해봐야 결판이 나게끔 되어 있다. 네덜란드와 브라질보다 못한 한국이 '경우의 수'를 열심히 따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의 한국팀이나 이번 대회 북한처럼, 2연패로 마지막 경기와 관계없이 '수'를 따져볼 필요도 없는 경우를 생각하면, '경우의 수'를 따져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3승은 무조건 1등이니까 빼고, 2승1무나 2승1패로 2위에 그치는 것은 1등이 아닌 것이 억울할 만큼 당연해 보인다. 1승1무1패로 2위는 그럭저럭 잘했고 운도 따른 듯하다. 그런데 3무나 1승2패를 하고도 2등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한 번도 못 이겼는데, 두 번이나 졌는데 2등을 할 수 있다니 억세게 운이 좋다. 그리고 억세게 운이 안 좋은, 2승 1패로 3등하는 경우가 있다. 세 번 중에 두 번을 이기고도 3등이라니 돌아버릴 일이다. 월드컵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걸까.
그런데 우리는 이 절묘한 경우의 수를 일상생활에서 자주 겪고 있다. 우리는 자주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우리가 월드컵을 볼 때처럼 심각하게 판단하지 않을 뿐, 그 선택은 승 무 패로 나눌 수 있다. 무슨 일을 할 때 세 번의 선택 기회가 있다. 2승으로 성공을 확정짓거나 2패로 실패를 확정지은 경우가 아니라면, 마지막 기회에서 최대의 반전을 노릴 수 있다.
여기까지 쓰고, 대망의 결전을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쓸 수 있게 되었다. 1승1패1무. 2위. 그럭저럭 잘했고 운도 따른 듯하다, 라고. 일상생활에서도 월등히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가진 바 최선을 다했고 거기에 운까지 따라줬을 때, 우리는 기쁠 수밖에 없다. 그러나 8강 안에 드는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다. 승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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