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6강 진출이 걸린 한국과 나이지리아 축구경기가 있던 전날, 길거리에서 젊은 친구들이 파는 붉은 티셔츠를 어머니 '안 보살님' 것까지 3장을 샀다. 사고 싶었던 것을 사서 좋았고, 마수걸이라며 값도 깎아주었고 머리에 쓰는 붉은악마 뿔을 서비스해주어 좋았다.
어머니 처음에는 붉은 티셔츠를 보고 손사래를 쳤다. 이 나이에 누가 이런 옷을 입느냐는 어머니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며 결국은 입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를 비롯하여 우리 식구는 붉은 티셔츠를 입고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가족응원을 하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잠결에 어머니 방에서 TV 소리가 나서 후다닥 뛰어갔더니 시간은 새벽 3시, '코리아 파이팅'이란 문구가 쓰인 붉은 티셔츠를 입은 어머니 미리 앉아 계시지 않는가. 결론을 말하자면 그 경기의 가족응원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한 식구는 '안 보살님'뿐이었다.
나는 2대2로 비겨서 태극전사가 16강에 진출했다는 이야기를 잠결에 들었다. 어머니 그 전전날은 아팠고 전날은 부산까지 갑상선 약을 타러 다녀왔다. 몸이 불편했을 것인데 꼿꼿하게 앉아 합장을 하며 관세음보살을 찾으며 태극전사를 응원했다. 아침에 일어나 어머니 방으로 가보니 붉은 티셔츠를 입고, 오랜만에 늦잠 자는 행복한 얼굴이 진짜 '보살(菩薩)' 같았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