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나라 때 양일이라는 젊은 군수가 허난(河南)성 황천에 부임했다. 정탐꾼을 여럿 내보내 세세한 민심까지 살피며 엄정하게 공무를 집행한 그를 백성들은 천리안(千里眼)이라고 불렀다. 그 뒤부터 천리안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정확히 꿰뚫어보는 능력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24일 우리는 지구의 현재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천리안을 갖게 된다. 한국의 첫 정지궤도복합위성인 천리안은 1,000리(약 400km)보다 훨씬 먼 3만5,800km 상공에서 지구를 훤히 내려다볼 것이다. 천리안이 보는 지구 지름은 지구에서 보는 달 지름의 약 34배, 면적은 1,000배 이상이다.
정지궤도 vs 저궤도
정지궤도위성은 지구 자전주기와 같은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돌기 때문에 항상 같은 위치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상의 고정된 한 지역을 항상 관측할 수 있어 통신이나 관측에 유리해 상업용 위성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위성의 원심력과 지구의 중력이 평형을 이루는 고도는 적도 상공 3만5,800km로 제한되기 때문에 위치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각국이 운용 중인 정지궤도위성은 360여개. 거의 포화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국산 정지궤도위성이 자리를 잡는 건 우주천연자원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된다.
한국 최초의 정지궤도위성은 이미 수명을 다한 무궁화 1, 2호다. 지금은 무궁화 3호와 5호, 한별위성이 통신 및 방송 임무를 수행 중이다. 이들은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과 함께 개발됐다.
10일 나로호에 실려 발사된 과학기술위성 2호는 저궤도위성이다. 정지궤도위성보다 훨씬 낮은 500∼1,500km의 지구 대기권 상층부를 돈다. 운용 목적은 대부분 기상이나 지구관측. 우주에서 찍은 아름다운 지구 사진은 거의 저궤도위성의 작품이다. 우리별과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시리즈가 바로 저궤도위성이다.
목표궤도 진입까지 2주 소요
정지궤도위성은 멀리 올라가야 하는 만큼 궤도 진입 단계가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천리안을 싣고 우주로 올라가는 유럽 발사체 아리안-5ECA는 보통 위성 2개를 한번에 발사한다. 이번에도 천리안보다 큰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랍샛 5A'를 먼저 발사체 상단에 장착한 다음 위성장착용구조물(SYLDA-5)로 덮어씌우고 그 안에 천리안을 넣는다.
아리안-5ECA는 발사 후 189.2초에 위성보호덮개(페어링)가, 541.2초에 1단이 분리되고 1,478.6초(약 25분)쯤 천이궤도로 접어든다. 천이궤도는 지구에서 가깝게는 250km, 멀게는 3만5,943km 떨어지는 타원궤도로 위성이 저궤도에서 정지궤도로 이동하는 길이다.
천이궤도 진입 2분 뒤 상단에서 아랍샛 5A가, 다시 3분여 뒤 SYLDA-5가 떨어져 나가면 비로소 천리안이 모습을 드러낸다. 발사 후 약 31분이 지난 시점이고, 고도는 2,005.3km다.
천이궤도에서 천리안은 태양을 바라보도록 자세를 잡고 전력을 얻기 위해 태양전지판을 일부분 펼친다. 지상에서는 이탈리아와 호주, 칠레, 미국 하와이의 4개 해외 지상국이 위성 분리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24시간 계속 교신을 시도한다.
발사 후 1.5일과 3.5일, 5일째 등 3차례 천리안은 자체 엔진을 가동해 표류궤도로 상승한다. 표류궤도는 정지궤도에 거의 근접한 원궤도. 정지궤도보다 고도는 약간 낮고 위성의 이동속도는 더 빠르다.
발사 후 6일째가 되면 천리안은 태양전지판을 완전히 펴고, 7일째엔 지구 위치를 파악한 다음 통신탑재체 안테나를 연다. 바로 이 때부터 6개월간 궤도상 성능테스트가 이뤄진다.
기상청 국가기상위성센터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운영센터,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위성센터, 전자통신연구원 통신시험지구국의 4개 국내 지상국도 본격 운영을 시작한다.
발사 후 2주, 드디어 천리안은 표류궤도에서 고도를 높여 목표 정지궤도인 동경 128.2도 위치로 진입한다. 김방엽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정지궤도위성관제팀장은 "한반도를 바로 내려다볼 수 있지만 궤도 운영엔 어려움이 있는 위치"라며 "중력이 안정된 인도양 쪽으로 위성이 흘러가려는 경향이 있어 수시로 위치를 바로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성능테스트가 끝나고 실제 정상적인 위성서비스가 제공되는 건 발사 6개월 뒤인 12월쯤부터다.
최초 3가지 복합기능 정지궤도위성
정지궤도위성으로 3개 탑재체를 동시에 실은 건 세계적으로도 천리안이 처음이다. 그만큼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각 탑재체의 시야를 확보하려면 아주 정밀하게 정렬해 조립해야 하고, 발열량과 영상품질 내부온도 등 탑재체끼리 서로의 작동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배제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천리안에 실린 통신탑재체는 국산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많이 쓰이는 주파수 대역(C, Ku)보다 더 빠른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Ka 대역을 사용하기 때문에 3DTV 같은 차세대 위성방송통신 서비스에 활용될 수 있다. 정지궤도에서 세계 최초로 해양관측을 위해 프랑스가 개발한 해양탑재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가로세로 2,500km의 고정 영역을 낮 동안 1시간 간격으로 하루 8회 관측한다.
미국이 만든 기상탑재체는 구름과 해빙 적설 황사 수증기량 해수면온도 황사 등을 관측한다. 이 데이터를 받으면 외국 위성을 통해 30분 간격으로 제공되던 기상예보 수준이 8∼15분 간격으로 향상될 예정이다. 천리안이 본격 가동을 시작하면 한국은 세계 7번째로 독자 기상위성을 확보한 나라가 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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