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의 환희 한 켠으로 남북 동반 진출의 기대가 무산된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44년 만의 월드컵 본선에 잔뜩 기대를 걸었을 북한 주민들의 낙담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10여일 동안 남북이 서로 월드컵 무대에서 선전을 응원하면서 대결보다는 협력의 대상이어야 함을 새삼 깨달은 것은 적지 않은 소득이다. 북한 스트라이커 정대세의 '조국 통일' 골 세리머니를 보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그의 눈물 바람이 우리 사회에 불러일으킨 신드롬의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높아지는 천안함 출구전략 압력
그러나 머지 않아 월드컵의 열광이 잦아들면 우리 사회는 다시 긴장과 위기의 남북관계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 6∙2지방선거 참패로 수세에 몰렸다가 잠시 숨을 돌렸던 이명박 정부도 남북관계를 어떻게 끌어가야 할지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물론 "북한이 두려워할 실질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여전히 강경한 대통령의 모습에서는 그런 고민의 기색이 엿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방선거로 대북 강경정책에 일정한 제동이 걸린 데 이어 월드컵 분위기로 남북간 긴장과 위기감이 누그러진 상태에서 정부가 강경책을 밀고 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 천안함 출구전략을 마련하라는 압력도 커지고 있다. 종교계 일부와 진보진영은 그렇다 쳐도 대통령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까지 정책보고서를 통해 출구전략을 건의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주평통의 건의 중에는 물밑 접촉을 통해 전격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이제 막 천안함 도발에 대한 응징의 입구에 섰는데 출구 얘기를 하는 것이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향후 남북관계에서 이상적 수준과 현실적 수준을 모두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외면하기 어렵다.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조치도 중국과 러시아의 소극적 태도에 부딪혀 전망이 불투명하다. 정부는 결의안이 어려우면 의장 성명에 북한의 도발을 강력히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싶어하지만 지금 형세로는 그마저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영국 등 우방국들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지원은 힘이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소극적 태도가 문제다. 러시아가 이번 주말 캐나다에서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에 앞서 열리는 주요8개국(G8)정상회의 성명 초안에서 천안함과 관련한 북한 비난 문구의 삭제를 요구했다는 것도 심상치 않다.
여기에 G20 멤버이자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 브라질이 가세했다. 평양주재 브라질 대사는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북 추가제재에 반대하며 대북교역도 확대하고 식량지원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브라질은 지난해 북한과의 교역이 2억 1,500만 달러로, 중국 한국에 이어 북한의 3대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경제력 규모가 큰 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4개 국가 중 인도를 제외한 3개국이 대북 추가제재에 반대하고 교역과 식량지원을 계속한다면 대북 제재는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 금융제재의 효과를 기억하는 미국이 추가 금융제재를 한다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에 주는 타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상상력 필요한 외교안보팀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냉정하게 보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안보리 결론이 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겠지만 시간이 반드시 우리 편이라고 보기 어렵다. 칼을 빼놓고 아무 것도 못 베는 최악의 결과를 피하려면 현실적인 타개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금의 외교안보팀으로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느냐다. 북한을 대화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급변사태 가능성에 더 기대를 걸고, 6자 회담 무용론에 기울어져 있는 그들에게서 새롭고 창조적인 상상력과 발상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그렇다면 전반전의 부진을 털고 후반전을 기약하기 위해 대폭 선수 교체가 불가피하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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