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마르크스주의 강의가 23일 강단이 아닌 법정에서 진행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형두) 심리로 진행된 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련) 전 위원장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재판에 국내 마르크스주의 권위자인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해 강의 아닌 강의를 했다.
앞서 검찰은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국유화, 자본주의 철폐 등 사노련의 강령이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해치는 것이라며 오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날 피고인 측 증인으로 출석한 김 교수는 "(사노련의 강령은)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오 교수를 옹호했다. 김 교수는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은 어려울 때 국민의 혈세를 다 가져다 쓰면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다"며 "이들 기업을 국유화해 이익과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지금의 공황상태를 해결하는 해법이자 세계적 조류"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아울러 사상의 자유를 법으로 처단하려는 것을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지적한 뒤, 경찰과 군대를 노동자 및 민병대로 대체한다는 사노련 주장도 "(정부기관이) 지나치게 집권층과 부유층을 옹호하면서 대중을 억누르고 있어 모든 사람을 위한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당위성을 강조했다.
검찰이 "사노련이 북한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자, 김 교수는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북한은 사회주의도,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사노련과 북한 사이의 선을 그었다. 김 교수는 "(오 교수의 주장은) 북한체제로 가자는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보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라며 검찰을 향해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체제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훈계조의 증언을 했다.
김 교수는 재판부가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폭력적 수단에 대해 언급하자, "의회 밖 수단이라고 해달라"며 "혁명을 위한 수단은 상대방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총을 쏘는데 가만히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이날 김 교수에 대한 증인신문은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25일로 정해진 다음 공판에는 또 다른 진보 지식인인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등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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