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니 그 풍성함에 우선 마음이 흡족해진다. 대표작 한두 개를 전면에 내세우고는 별반 감상 가치도 없는 소품 몇 점 늘어놓고 호객을 하는 대부분의 미술기획전과는 달리 '신의 손_로댕'전은 전시 작품의 질과 양에서 손색이 전혀 없다.
'사랑으로 빚은 조각' 섹션에 들어서면 로댕의 진솔한 표현에 약간의 충격까지 느껴진다. 남과 여의 육체는 기이한 각도로 뒤틀어져 서로 엉켜 있고, 근육과 뼈와 모발의 묘사는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의 정도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했을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서 어떻게 이런 작품의 전시가 가능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그렇게 천천히 작품들을 감상하며 걷다가 걸작 '칼레의 시민' 축소물을 만났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에 포위된 프랑스 북부 도시 칼레는 식량이 떨어져 결국 항복을 하였다. 영국 국왕은 시민들을 학살하지 않는 대신 6명의 희생양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칼레의 최대 부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나섰고, 시장과 법률가들이 뒤를 이었다. 시민들의 통곡을 뒤로 하고 교수형을 자원하여 떠났던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칼레시가 로댕에게 의뢰한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이다.
틀림없이 칼레시는 이들을 영웅처럼 묘사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로댕은 병자 같은 앙상한 몸매에 누더기를 걸치고 목에는 밧줄을 걸고 얼굴엔 공포와 후회가 가득 찬 인물들을 창조해 내었다. 모르긴 몰라도 칼레시는 몹시 당황하였을 것이다.
'발자크' 상은 또 어떤가. 프랑스가 칭송해 마지않는 이 문호를 로댕은 욕망과 남성성이 가득 찬 뚱보로 묘사하였다. 로댕에게 작품을 의뢰했던 프랑스문인협회는 '발자크' 상을 인도 받기를 거부하였고, 로댕은 제작비를 물어내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로댕은 이외에도 상당히 자주 작품 제작을 의뢰한 측을 당황시키는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그도 생활인이었으므로 고민하였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다. 영웅에 대한 진정한 칭송과 존경은 그 영웅이 가졌을 공포와 나약함을 그리는 것이라고, 문호를 진짜 사랑하는 것은 그의 결격을 숨기지 않는 것이라고, 에로스가 추하지 않으려면 그 에로스 속에 숨겨진 분노와 소유욕과 질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그것이 창작자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로댕은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 흔들림 없는 원칙이 당시에는 몰이해 속에 그를 고통스럽게 하였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작품을 미술사 속에 영원불멸의 이정표로 자리잡게 한 것임에 틀림없다.
전시장을 돌며 감상을 하다 마침내 '생각하는 사람' 앞에 섰다. 모나리자만큼이나 흔하게 소비해온 이미지, '생각하는 사람'. 거대한 근육을 가진 한 남자가 턱을 고이고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본다면 아이는 이 거대한 오브제의 시각적 장엄함에 지워지지 않는 유년의 기억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물어볼지도 모른다.
"아빠, 이 아저씨는 뭘 이렇게 생각해?"
"생각하는 게 아니라 결심하고 있는 거야. 더 잘해야겠다고!"
● 파리 로댕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로댕의 대표작 180여 점을 선보이는 국내 최초ㆍ최대 규모의 로댕 회고전 '신의 손_로댕' 전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8월 22일까지 열립니다. 1577_8968
영화감독ㆍ추계예술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