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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관치(官治)는 독(毒)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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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관치(官治)는 독(毒)인가

입력
2010.06.2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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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관료 출신인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자타가 공인하는 '관치의 화신'이었다. 그가 산은 총재로 부임한 2001년은 'IMF 사태'의 여진이 가시지 않아 관치라는 말 자체가 '주홍글씨'처럼 수치로 여겨지던 때였다. 1997년 IMF 사태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으로 관치금융이 지목됐고, 시장주의가 금과옥조로 부상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IMF 사태의 후유증으로 남은 대우자동차 매각이니 하이닉스 처리 같은 부실 정리과정에서 그는 공공연히 관치주의자를 자처했고, 사석에선 낄낄거리면서 기꺼이 그 '악명'을 즐기기까지 했다. 기자들이 어느 정도 애정을 담아 '관치의 화신'이라고 자신을 희롱할라 치면 짐짓 목을 싸움닭처럼 뻣뻣이 세운 특유의 자세로 오연한 훈계를 하곤 했다.

"시장주의니 뭐니 하는데, 금융은 달라. 은행이 수익만 보고 일하기 시작하면 난리 나는 거요. 거, 철모르는 소리들 하지 마세요."

요컨대, 시장주의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금융은 본질적으로 '공공의 가치'를 도외시할 수 없으며, 그것을 시장에서 관철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관치라는 논리였다.

정 전 총재가 자신의 주장대로 '정당한 관치'를 했는지 여부는 후세가 평가할 일이다. 다만 그의 추억을 새삼 떠올린 건 최근 KB 회장 인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해묵은 관치 논란 때문이다.

사실 KB 회장 인선과 관련해 제기된 비판 논리들은 매우 단순하다. 실무경험도 없는 대통령의 측근이 KB 회장에 낙점된 것은 분명히 관치이며, 관치는 나쁜 것이라는 얘기가 사실상 전부다. 자연스럽지 못한 인선에 권력이 작용한 것이 정실인사의 문제인지, 관치의 문제인지 구별조차 없다.

그러면 이구동성처럼, 관치는 무조건 독인가? 분명한 건 금융이건 기업이건 방임적 시장주의, 그리고 '시장경제원리'라는 폼 나는 말로 포장돼 한 시절을 풍미한 몰가치적인 수익 제일주의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확실히 힘을 받고 있는 게 최근의 추세라는 점이다. 시장가치에 의해 공공가치가 철저히 축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 '시장근본주의'의 최대 맹점이라고 '자백'한 조지 소로스를 들 것도 없이, 최근 월스트리트 금융사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사회적 견제'는 이 같은 흐름을 뚜렷이 반영하고 있다.

금융사의 수익 위주 경영에 대한 사회적 견제는 특히 국내 최대은행이지만 외국인이 절대지분을 장악해 예대ㆍ투자ㆍ운용정책에 있어서 우리 사회의 공공가치와 충돌할 소지가 큰 KB의 경우 더욱 절실할 수도 있다.

따라서 KB 회장 인선에 대한 공공의 시각은 관치에 대한 타성적 거부감 보다, 이번에 작용한 정부의 영향력이 시장주의와 공공가치의 균형점을 찾는 '정당한 관치'로 발현되는지를 면밀히 감시하는 데 맞춰지는 게 생산적일 것이다.

최근 국내에 소개된 (랜덤하우스)에서 저자 쑹홍빙은 IMF 사태 직후 '신관치'로 비판 받기도 했던 당시 우리 정부의 부실처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평가를 했다.

'월가의 속셈을 미리 알아차린 한국 정부는 IMF가 내세우는 독약을 의연히 거절하고 파산 신청 준비를 마친 대기업의 안건을 일괄 동결했다. 그리고 은행의 700억~1,500억 달러나 되는 부실채권을 정부가 과감하게 떠안았다. (한국 자산을 날로 먹으려던) 국제 금융재벌들은 공연히 헛물만 켜다 만 셈이 됐다.'

장인철 생활과학부장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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