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전력 면에서 북한은 포르투갈의 상대가 아니었지만 대 브라질 전의 선전과 44년 전의 3 대 5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북한 대표팀의 투지에 은근히 이변을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0 대 7 참패. 속절없이 무너지는 북한팀을 지켜보며 안타깝고 착잡한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남쪽의 우리가 이런데 잔뜩 기대를 걸었을 북한 주민들의 실망과 낙담은 오죽할까 싶다. 신산한 그들의 삶에 큰 위로가 될 법했던 잔치가 너무 일찍 잔인하게 끝나고 말았다. 북한 당국이 어려운 여건에도 큰 맘 먹고 생중계한 게임이었는데 체제에 큰 충격을 주는 악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 북한의 패인을 두고 네티즌들 간에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그만큼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크다는 반증이다. 전술 실패와 체력 고갈이 주된 원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기량이 훨씬 앞선 포르투갈에 무모하게 맞불을 놓은 전략이 문제였고, 한 골을 먹은 뒤 더욱 공격적으로 나오다가 수비에 큰 구멍이 생겨 대량 실점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또 수중전에서 악착같이 따라붙다가 체력이 크게 떨어져 나중에는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이 숫제 걸어 다닐 정도였다. 일부 네티즌들은 북한 선수들이 우천용 축구화를 신지 않아 자주 미끄러진 것도 패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 북한의 체제와 패인을 연관시킨 한 네티즌의 분석에 공감을 표시하는 네티즌들도 많았다. 북한의 철저한 폐쇄 체제가 외부의 영향력 침투를 철저하게 막고 있듯이 북한 대표팀의 거미줄 수비망이 브라질 전에서는 효과를 발휘했지만 포르투갈 전에서는 수비망의 허점이 드러나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었는데 북한의 체제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도 대 아르헨티나 전에서 실점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하게 공격에 나섰다가 대량 실점한 것을 보면 좀 무리하게 끌어다 붙인 분석이 아닌가 싶다.
■ 정대세가 준비했다는 통일 세리머니를 끝내 보지 못한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어깨가 축 처진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거침없고 당찬 언행과 브라질 전에 앞서 흘린 눈물이 불러일으켰던 '정대세 신드롬'에도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북한선수들이 처절하게 지고 있으면서도 넘어진 포르투갈 선수들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거친 태클을 거의 하지 않은 매너에는 찬사가 쏟아졌다. 남은 코트디부아르 전에서는 차분하게 실력을 발휘해 또 다른 꿈을 꿀 밑천을 챙겨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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