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권을 쥐어야 하는가. 6ㆍ2 지방선거 후 거세게 불고 있는 세대교체론 속에는 이 물음이 응축돼 있다. 지금의 세대교체론은 외형상 당권을 둘러싼 논쟁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차기 대권을 겨냥한 논리이자 포석이다.
세대교체론은 쉽게 말해 정치 주도세력이나 지도자를 새 인물로 바꾸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단순한 연령 차원의 노소(老少)교체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적 차원에서 낡은 가치를 새롭게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정치판을 바꾸는 새로운 가치
지방선거의 메시지는 어느 쪽일까. 오세훈, 송영길, 안희정, 김두관, 이광재 등 40대~50대 초반의 당선자들을 보면, 일단 '젊은 세대'의 등장이 국민의 바람처럼 보인다.
한나라당의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40대 당권 도전자들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바람을 탄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를 놓고 정세균 대표와 정동영, 박주선 의원 등 기존 멤버들이 나서고 있어 세대교체와 관련해서는 조용하다. 하지만 정 대표 체제를 지탱해온 40대 친노 운동권 출신들이 당내 기반을 상당부분 장악했고, 이들이 차기 도전을 선언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점에서 내면적으로는 민주당이 훨씬 더 세대교체의 바람을 타고 있다.
젊은 세대의 등장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한 것일까. 그런 측면도 있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모습일 뿐이다. 지방선거의 메시지는 연령적 세대교체보다는 가치와 신념의 변화에 방점이 놓여 있다. 2012년 대선에서도 국민들은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떤 가치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지난 대선들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대권은 가치, 신념과 시대정신의 접점에 놓여 있었다. 대선주자가 내세운 가치, 신념이 국민의 바람, 시대의 당위와 맞아떨어질 때 대권을 쥐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로 국가시스템 전반의 수술이 요구됐던 1997년 대선에선 민주화 상징이면서도 경륜을 갖춘 DJ가 대권을 잡았다. DJ는 외환위기 극복과 복지, IT육성, 남북관계 개선 등 업적을 냈지만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정치개혁의 바람이 불었고, 그 흐름은 외길을 걸어온 '바보 노무현'의 당선을 가져왔다. 하지만 노무현 시대는 갈등과 대립으로 시종 혼돈스러웠기에 2007년 대선에선 국민들은 선진화와 성장을 내건 이명박 대통령에게 표를 아낌없이 줬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국민이 압도적 지지를 보내며 원했던 상황과 거리가 멀다. 지난 대선 때 강북에서도 MB 지지표가 쏟아져 나왔는데, 선거전문가들은 이를 '기복신앙'으로 묘사했다. 즉 MB가 집권하면 샐러리맨 신화나 청계천처럼 성장의 신화를 만들어 모두가 잘 살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지를 줄이더라도 성장하면 그 과실이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낙수효과'도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부자감세'를 해도 기업투자가 늘지 않고 오히려 실업이 늘고, 대기업들이 사상최대 흑자를 냈지만 서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지는 '풍년 속 거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북한의 버릇을 고친다며 쌀, 비료 지원마저 중단했지만 결과는 남북관계 악화, 한반도 위기 고조,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의 개입과 영향력 증대라는 엉뚱한 쪽으로 가고 있다.
중요 쟁점은 복지ㆍ한반도 위기
따라서 차기 대선에서 국민들은 이 두 가지에 대한 답을 요구할 것이다. 서민의 삶을 챙기는 보편적 복지, 남북관계 회복과 한반도 위기관리에 대해 명확한 답을 갖지 않으면, 국민들은 외면할 것이다. 지금 세대교체를 외치는 도전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폼이나 나이만을 내세우지 말고 두 가지 아젠다를 진정으로 고민, 답을 찾아야 한다. 그 가치와 신념이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지면 대권이 오는 것이지, 그저 바람에 편승하는 한가한 태도로는 민심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영성 편집국 부국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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