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에 따른 인플레 혹은 자산가격 급등 위험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지난 10일 열린 금융통화위가 물가 안정을 강조하고 김 총재도 하반기 물가상승 압력에 유의한다고 말했지만, '인플레 위험'을 직접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그런 만큼 한은이 내달쯤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지나친 신중론으로 비판 받던 한은이 늦게나마 인식을 바꾼 것은 다행이지만, 통화정책을 주도하지 못한 아쉬움은 크다.
그동안 한국의 급속한 경기 회복세에 따른 금리 인상 필요성은 3월 이후 국내외에서 수 차례 제기됐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만 해도 두 번이나 관련 보고서를 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수 차례 마이너스 상태인 실질 금리의 정상화를 권고했다. 특히 최근 나온 '한국경제 보고서'는 "민간부문 고용이 늘고 실업률이 내년에 3.5% 이하로 떨어지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라며 기대 인플레 목표치인 3% 수준에 부합하는 금리 인상을 제시했다.
확장적 재정ㆍ통화정책 기조를 강조하던 정부마저 물가에 신경 쓰기 시작한 것도 김 총재의 적극적 판단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개석상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하반기 물가상승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특히 윤 장관은 국내총생산(GDP) 갭(잠재성장률과 실제성장률의 차이)의 플러스 전환, 통화 유통 속도의 상승세 확대, 생산자 물가의 빠른 상승 등의 근거도 제시했다.
이렇게 보면 김 총재는 남들이 차려 놓은 밥상 위에 숟가락을 하나 더 얹은 셈이다. 그는 "통화정책을 운용할 때는 (인플레) 위험과 유럽의 재정위기로 세계 경제성장이 저해될 가능성을 균형 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이제야 세계경제의 더블딥 우려가 크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그의 고민을 이해한다 해도 통화정책이 3~6개월 뒤 효과가 나타나는 점을 감안하면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책임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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