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국민회의 김대중 신한국당 이회창 국민신당 이인제 등 세 후보가 경합한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의 김종필 총재와 연합한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50만 표 차로 누르고 당선했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새 정부의 한국은행 총재로 내 이름이 일부 신문에 거명되기 시작했다. 그 후 98년 2월초에는 한은 총재 후보로 전철환 충남대 교수와 내가 최종적으로 김대중 당선자의 낙점을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지인에게서 받았다. 한국은행 총재는 내가 하고 싶어했던 자리였던 만큼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내가 아니고 전철환 교수였다.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를 이룩해낸 김 대통령으로서는 노태우 정부에서 국무위원을 지낸 나보다는 참신성과 개혁성이 돋보이는 전 교수를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철환 교수는 나의 중학과 대학의 2년 후배일 뿐 아니라 금융통화위원도 같이 해서 나와는 인연이 깊다. 행정고시를 하고 정부에서 일했지만 그 후 대학으로 가서 청렴하고 강직한 선비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한은 총재가 되어 IMF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는데 큰 기여를 하고 퇴임한 지 얼마 안 되어 안타깝게도 타계하였다.
그 후 2001년 2월 말에 나는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했다. 평생 처음으로 일정한 직장이 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정년퇴임 후에도 나는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냈다. 가고 싶은 곳도 많았고 읽고 싶은 것도 많았다. 만나야 할 사람 가야 할 모임도 많았다. 그 밖에 삼성물산 사외이사직과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공동위원장 직을 맡고 있었는데 이러한 일로도 자주 나가야 했다.
삼성물산 사외이사직은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 워싱턴 대학 박윤식 교수 등과 같이 삼성물산 현명관 회장의 권유로 맡게 되었는데 이상대 정우택 사장 등 경영진들과 호흡을 맞춰 일하면서 기업에 대한 것을 많이 배웠다. 공적자금관리위원장 직은 비상근이었지만 자주 회의에 나가야 하고 국회에도 불려나가야 하는 자리였다.
전철환 총재의 임기가 2002년 3월말로 다가오자 2001년 12월부터 그 후임으로 내 이름이 다시 신문에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3월 10일 저녁 청와대 전윤철 비서실장으로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나를 차기 한은 총재로 내정했으며 3월 19일의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는 대로 발표하게 될 것이라는 전화통보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한국은행은 내 인생의 고향이다. 사회생활의 첫발을 디딘 곳이 그 곳이고 내게 경제적 안정을 주고 내가 박사학위를 얻어 교수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도 한국은행이다. 이렇게 내 인생의 애환이 서린 곳에서 내가 66세의 나이로 현역에 복귀하여 마지막 봉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더 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4년 전 한은 총재직의 기회를 놓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즉시 신변정리에 나섰다. 삼성물산 사외이사직과 공적자금관리위원장직을 사임했다. 나는 30년 가까이 살고 있던 은평구의 단독주택 이외에는 부동산에 투자한 일이 없어 부동산 쪽에서 정리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던 금융저축 가운데는 주식이 있었는데 이것은 모두 처분하여 수익증권으로 바꿨다.
내정통보를 받은 뒤부터 한은총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내 임기 중의 중점과제를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한은 독립성을 확고히 하기 위한 한은법 개정, 새 화폐 및 고액권 발행과 화폐단위 축소변경(리디노미네이션) 등 화폐제도 개혁, 조직과 업무 등 내부개혁, 남북통일시의 화폐통합문제를 포함한 남북경제연구 등이었다. 그리고 한은 박철 부총재의 도움을 받아 내 마음과 구상이 담긴 취임사를 준비했다.
2002년 4월 1일 아침 우리 내외는 청와대에 가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제22대 한은총재 임명장을 받았다. 나로서는 김 대통령과 처음으로 독대하는 자리였다. 임명장을 주고 잠시 환담하는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그 동안 나의 신문기고 활동과 공적자금관리위원장직 수행에 대해 치하하고 한은 총재로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면서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여 경제난을 타개 해달라고 하셨다.
임명장을 받고 즉시 한은으로 가서 취임식을 가졌다. 나는 형식을 초월하여 직원들과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취임사를 읽었다. 직원들 한 분 한 분을 내 친형제 자매와 같이 애정을 가지고 대할 것이라 했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고히 지키겠다고 했으며 그러면서 정부와 협력하여 경제난을 타개하겠다고 했다. 한은의 내부 조직과 업무를 보다 개방적이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쇄신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나는 내 인생 마지막 봉사로서 일할 것이니 모두들 함께 가자고 했다.
취임사가 끝나고 기자들과 직원들 모두 놀라는 표정이었다. 내가 정부에 봉직한 일이 있어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던 터였는데 한은 독립성에 대한 확고한 소신과 격의 없는 나의 메시지가 이들의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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