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멕시코만 해저원유 유출사태가 가져온 재앙은 막을 수 없는 것이었을까. 이 사건 하나만을 보자면, 석유회사 BP가 보다 안전을 기했다면 막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심해유전 개발이 빠르게 늘고 있는 전반적 추세를 감안하면, 어디서든 이런 사건이 터질 수밖에 없는 개연성도 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석유개발의 역사가 150년을 넘어서면서, 땅에서 쉽게 석유를 뽑아내던 시대는 가고 점차 심해나 북극지역을 들쑤시는 위험천만한 석유 시추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는 원유유출, 환경파괴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얘기도 된다.
위험한 심해 석유시추 급증
미국 내무부 산하 광물관리청(US MMS)에 따르면 멕시코만의 심해유전 개발은 1992년 3건이었지만, 2008년 31건으로 16년 사이 10배 이상 늘었다. 멕시코만, 브라질, 서부아프리카 연안을 연결하는 '골든 트라이앵글'지역의 심해유전 개발은 2000년 44건에서 2007년 157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브라질 연안의 투피, 주피터 유전은 최근 몇 년 사이 새롭게 발견된 최대 유전으로 꼽히며, 나이지리아와 앙골라 근해 유전도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심해 유전의 기준이 제각각 이어서 통일된 수치는 없다"고 전하고 있다.
다만 석유전문가들과 석유개발회사 엑손모빌 등은 보통 해저 400m 밑으로 내려가면 심해유전으로 분류한다. 반면 US MMS는 305m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물론 심해유전은 대륙유전에 비하면 아직 개발비율이 적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대륙유전이 해안유전보다 2배, 심해유전보다 10배 가량 많았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앞으로 파헤쳐질 것이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북극 심해의 경우, 전세계 매장량의 13%에 달하는 1,600억 배럴이 묻혀 있다는 통계도 지난해 발표됐다.
현재 알래스카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북극 원유개발이 북극 중심부의 빙하에서 이루어질 날도 머지 않았다는 얘기다.
시추기술은 발달, 환경오염 방지기술은 뒤쳐져
국제자연보호연맹(IUCN) 사무차장인 윌리엄 잭슨 박사는 "석유개발회사들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석유시추가 가능하도록 점점 더 정교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반면 시추과정에서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는 기술개발은 시추기술 발전을 따라 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태계에 민감한 지역을 헤집고 있으면서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오염 방지 기술개발은 등한시 하고 있다는 것이다.
BP 사태만 보더라도 뛰어난 시추기술을 앞세워 해저 1.5km까지 들어가 원유를 끌어올렸지만 파이프가 파열돼 원유가 쏟아져 나오자 두 달이 넘도록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있다. 원유를 중화시키는 분산제는 독성 논란에 대한 검증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뿌려지고 있고, 유정을 막고 원유를 빨아들이기 위한 덮개는 수많은 실패 끝에 설치됐지만 효능이 떨어진다.
잭슨 박사는 "환경적, 사회적 충격을 감안하면 기술이 현재보다 더 발전됐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그나마 근해의 난류에서 발생했기 망정이지, 만약 이번 사태가 저 멀리 북극의 빙하 아래 바다에서 터졌다면 어떻게 됐을 지 더 끔찍하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전세계 매장량 해마다 늘어… 결국 '석유고갈론'은 허상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고를 계기로 '석유 고갈론'이 확산되고 있다. 석유 생산량은 이미 정점을 지났으며, 조만간 석유 공급부족 시대가 도래해 세계경제의 근본적 전환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견해다.
특히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미국이 통계를 조작해 석유 비축량 예상치를 부풀렸다며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간 내 석유가 마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석유 고갈 시대에 살아남는 법' 등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마치 석유 없는 시대가 코 앞에 닥친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오일&가스 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기준 전세계 원유 추정 매장량은 213조2,000억ℓ다. 현재 전세계 하루 원유 생산량이 135억ℓ에 달한다고 볼 때 향후 약 43년 동안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문제는 석유매장량이 채굴 기술발전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는 점이다. 화석에너지 전문 사이트 '피크오일뉴스'에 따르면 1882년 원유 추정 매장량은 150억ℓ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1926년 715억ℓ로 증가했으며, 다시 불과 6년만인 1932년 1조5,900억ℓ로 수정됐다. 추정 매장량은 계속 증가해 1950년 15조9,000억ℓ, 1993년 약 150조ℓ까지 껑충 늘어났다가 현재 213조2,000억ℓ에 이르렀다.
달리 말하면 이는 수 십년 간 석유 소비가 늘어 났음에도 석유 매장량은 줄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 사이트는 "추정 매장량은 경제적, 기술적 조건을 따져 현재 파낼 수 있는 양을 수치로 환산한 것"이라며 "기술 발전으로 생산할 수 있는 양은 늘어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들어 측정 및 시추기술 발달로 북극해, 미국과 브라질 해안의 심해저 지형 등에서 거의 매년 새로운 유정이 발굴되고 있다. 결국 지구의 석유자원은 언젠가는 마르겠지만, 적어도 상당기간 '석유 고갈론'은 허상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화석연료의 대표격인 석유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야기하고, 채굴과정에서의 환경재앙 발생 가능성 때문에 갈수록 미운 털이 박히고 있는 실정이다. 1990년대부터 불고 있는 전세계적인 그린 에너지 열풍은 석유 대체물 찾기 운동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실제로 자동차 등의 연료로 에탄올, 전기, 수소 등 대체에너지 활용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면 석유에 대한 선호도는 줄 것이다. 때문에 석유고갈론은 단순히 '물리적' 차원을 넘어 석유가 더 이상 인류에게 매력적 에너지원이 되지 못하는 시기가 도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대혁 기자
■ 원유유출과 환경피해 사례/ 눈에 보이는 피해는 '빙산의 일각'
원유유출로 온몸에 끈적한 기름을 뒤집어 쓴 채 눈만 껌벅거리는 펠리컨은 어떤 말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멕시코만 원유유출은 사상 최악의 환경피해를 불러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미 당국은 20일(현지시간)까지 조류 934마리, 거북이 380마리, 돌고래 등 포유류 46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그것이 파괴된 생태계의 일부도 드러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기름 유출로 인한 조류나 해양동물 피해는 해안가에서 수거한 사체로 파악하는 실정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거나 신음하는 개체가 더 많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한 미 남부 루이지애나 인근은 어류 445종, 조류 134종, 포유동물 45종 등 모두 600여종의 생물이 살고 있는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하지만 유출 원유 확산으로 플랑크톤이 파괴되고, 게 굴 새우 등 해양생물들이 직접적 피해를 입으면서 죽음의 바다로 변하고 있다. 환경 전문가들은 생태계 회복에 20년에서 30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역대 해양에서의 원유유출 사고 피해를 보면 그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1989년 엑손 발데스호 원유 유출사고 때에는 약 70만마리의 조류와 5,000마리의 바다수달이 죽었다.
살아남은 것들도 생식 능력을 잃어 멸종하거나 개체수가 복원되지 않는 등 타격이 컸다. 1993년 브라어호 사건 때는 스코틀랜드 북동쪽 군도 셰트랜드 해안의 홍합 가재 양식지역이 6년간이나 어업제한지역으로 묶였고, 1999년 에리카호 침몰 때는 총 5만마리의 조류가 폐사했으며 프랑스 북서부 브리태니 해안의 굴 양식장과 염전이 훼손됐다.
미국은 1969년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해안 기름유출 사고 이후 해양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 이듬해 4월 22일을 '지구의 날'로 선포하는 등 해양사고에 대한 공동대응 캠페인을 시행했다.
그러나 환경운동의 꾸준한 발전에도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아직 멕시코만에서의 원유 유출량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일 미 하원의원이 폭로한 BP사 내부문건에 따르면 멕시코만의 하루 기름 유출량은 약 1,600만ℓ로, 당초 BP가 밝힌 양의 20배가 넘는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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