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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월드컵 응원과 한글 푸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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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월드컵 응원과 한글 푸대접

입력
2010.06.2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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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응원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광장, 여의도 너른 들판, 반포지구 인공섬, 코엑스광장 등 전국 곳곳에 붉은 함성의 물결이 일었다. 붉은 색 티셔츠에 새긴 구호는 'Korea Legend' 'Korea Again' 'The Shouts of Reds' 'Fly Korea'를 비롯하여 8년 전의'Be the Reds'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한글 구호는 보기 드물다.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응원문화에 정체성이 2% 부족하다. 한글로 디자인한 멋진 티셔츠를 입고 응원하는 모습은 한국의 이미지를 더 선명하게 부각시킬 것이다.

국회에 외국 귀빈 초대소를 짓는다고 한다. 한옥으로 짓는다는데 갈채를 보낸다. 그런데 이름을 '允中齋(윤중재)'로 지으려다 한글단체가 반대하자 한글 이름을 추천해 줄 것을 요청했고 한글 학자들이 22개 이름을 지었다. 가온채, 참마중, 사랑마루 등 예쁜 토박이말 이름의 수용 여부는 불투명하다. 세계의 귀빈들이 묵을 곳에 한자 간판이 붙은 것을 생각하면 낯이 뜨겁다. '允中齋'는 유교 서적에서 따온 이름이라 시대 정서에 맞지 않고, 세계 으뜸가는 한글을 가진 나라의 국회답지 못하다. 여의도 윤중로나 윤중중학교의 '윤중(輪中)'이 일본말이어서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같은 발음의'允中齋'는 국민의 오해와 비판을 받을 것이 뻔하다.

한국의 저명한 기업가가 베트남에서 앞면에는 한자, 뒷면에는 영문 이름을 새긴 명함을 내밀자"당신 중국인이오?"라고 묻더란다. "아니오, 한국인이오"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하자 "당신네는 글자가 없소?"라고 묻더란다. 그제서야 상황을 알아차린 한국인 기업가는 쥐구멍을 찾기에 바빴다는 일화이다.'누드'라고 말하면 고상한 예술작품이 연상되고'나체'라면 그런대로 들어줄 만한데, '알몸'이라고 표현하면 상스러운 인상을 준다고 그 기업가는 생각했는지 모른다. 영어와 중국어에 밀려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이 괄시 받지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얼마 전 서울 퇴계로'한국의 집'에서 한글 현판식이 있었다. '한국의 집'은 연간 1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찾는 관광명소다. 하지만'海隣館(해린관)'이란 한문 현판 때문에 관광객들이 중국에 왔는지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걸 한글 현판으로 교체함으로써 한국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집이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잘한 일이다.

세계 최고의 문자를 갖고 있는 우리는 우리글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용해야 한다. 국회와 관공서, 대기업에서 민초들에 이르기까지 우리글을 아끼고 사랑해야 외국인들도 한글의 귀중함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동네 이름에 영어가 들어가야 폼 나고 아파트 이름에 영어가 들어가야 프리미엄이 붙는다고 생각한다면 예쁜 토박이말로 바꾸어보라.

거리의 간판, 기업과 정부기관의 명칭, 지방자치단체의 구호 등에 혼란스러울 만큼 영어가 남용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추진하고 있는 '워킹 스쿨버스'사업, 농림수산식품부가 막걸리 애칭 공모전에서 1등으로 선정한 '드렁큰 라이스(drunken rice)', 서울시가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하나로 계획한 인공섬 '플로팅 아일랜드'의 이름 등은 외래어를 남용한 대표적 사례이다. 도무지 외국인들도 이해하지 못할 괴상한 외국어 이름도 많다.

부디 관료들부터 정신 차리시라. 외국 언어학자들이'꿈의 알파벳'이라고 칭송하는 한글은 세계 1류 문자이다. 그런 한글을 스스로 2류나 3류로 낮춰 봐서는 안 된다.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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