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적도 바로 북쪽 마셜 제도에 '비키니 환초'가 있다. 1946~1958년 미국이 핵무기 실험을 하던 섬이다. 1952년 미국은 여기에서 세계 최초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실제 위력에 놀랐던 과학자들은 수소폭탄 실험만 하고도 스스로 화들짝 놀랐다. 발목만 내놓던 치마 수영복을 원피스 모양으로 개조하면서 원자폭탄 쇼크에 비유해 '아톰'이란 이름을 붙였을 때였다. 라이벌 디자이너가 화들짝 놀랄 만한 새 수영복을 선보이며 그 이름을 '비키니'라고 부른 것은 이 실험이 알려진 직후였다.
■ 수소폭탄의 방아쇠나 뇌관으로 원자폭탄을 쓴다는 것만 봐도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에 선수를 빼앗긴 소련(현 러시아)은 이듬해인 1953년 새로운 실험에 성공했는데, 미국이 액체수소를 사용(습식)한 반면 보다 가볍고 부피가 작은 고체수소를 이용(건식)했다. 1961년 10월 소련이 북극권에서 무게 27톤의 수소폭탄을 터뜨리는 실험을 했을 때 960㎞ 높이까지 화염이 치솟았다. 북유럽 일부 지방의 창유리까지 깨졌고, 충격파 관측은 지구를 3바퀴 돌 때까지 이어졌다. '차르'라는 이 폭탄은 현재까지 인류가 실제 터뜨린 것 중 최대로 기록됐다.
■ 수소폭탄의 폭발력, 즉 에너지 방출은 태양의 그것과 원리가 같다. 원자폭탄으로 일순간 터뜨리면 가공할 무기가 되지만 전기나 레이저로 서서히 가동하면 훌륭한 에너지원이 된다. 이런 인공태양을 만들자는 국제적 노력이 'ITER(국제핵융합실험로) 프로젝트'다. 미국 일본이 EU와 함께 추진했는데, 중국 인도가 합류했다. 돈 없고 힘도 약한 우리가 정식 멤버로 초청된 것은 2007년 국가핵용합연구소(NFRI)가 독자적으로 세계 최대의 한국형핵융합연구로(KSTAR) 개발에 성공한 기술력 덕분이다. KSTAR의 애칭은 '한국의 별(Korean Star)'이다.
■ 이쯤 되어야 진정한 핵융합 기술을 말할 수 있다. 북한이 지난달 12일 "핵융합 반응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이후 일부 언론이 '북한이 수소폭탄 만드는 기술을 실험했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핵융합 실험 자체는 웬만한 연구소면 가능하다. 북한의 주장은 거짓이 아닐 수 있다. 그들의 발표는 원자폭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수소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석해 주기를 바라는 전형적인 '2중 화법'으로 보인다. ITER 멤버들 중에도 실용적 기술이 없는 나라들이 있는데, 북한의 화법에 넘어가 지레 난리를 친다면 민망한 일이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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