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진다. 높게 솟은 대성동 철탑의 태극기와 북한 기정동 선전마을에 서있는 인공기 사이로 붉게 물든 여름 해가 걸쳐 있다. 야간 근무조가 진지에 투입할 시간이다.
K2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탄약고에서 실탄과 수류탄을 지급받고 군장검사를 한다. 소총에 탄창을 끼우고 출동준비를 완료 한다. "적 발견 시 지형과 형평에 맞게 대응 하라. 꼭 크레모아 수류탄 사격 순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적군 대응 요령을 시연하는 소초장의 능숙한 몸짓에 긴장감이 묻어 나온다.
여기는 서부전선 최전방 육군1사단 육탄부대 백학대대 백학고지, 철책선을 경계로 북의 아홉 개 진지와 마주 하고 있고, 김정일이 방문했다는 대적산이 코앞이다. 상황실에선 스나이퍼와 TOD등 전자장비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북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대원들이 능선과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철책점검을 끝내자 어둠이 몰려온다. 북측은 불빛 하나 없는 암흑이다. 가끔 캑캑거리는 고라니 울음 소리가 들릴 뿐 온 천지가 고요하다.
탕탕탕… 순간 적막을 날려 보내는 사격소리가 들린다. 철책선 야간사격 훈련이 실전처럼 벌어 진다. 야간 투시경을 쓴 병사는 암흑 속으로 실탄을 날린다. '기다리고 유도하고 코앞에서 일발필중' GOP 근무수칙에 적혀 있는 사격술을 연마하는 병사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이곳이 전선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한국 남자가 군에 입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소총수 최대영 일병은 아르헨티나 교포 출신이다. 입대 결심을 말하자 흔쾌히 허락한 아버지는 일년반전에 함께 귀국했다.
쌍둥이 형제로 동반 입대한 김경헌, 병문 상병은 "현역 군인들 중에서 2퍼센트 정도만 GOP최전방에 설수 있으니 우리가 나라를 지키는 국가대표 젊은이"라는 자긍심이 생겼다며 활짝 웃는다. GOP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은 외출 외박이 없다. 그런 만큼 쾌적하게 생활하고 임무에 충실 할 수 있도록 침대, 세탁기, 정수기는 기본이고 화장실에는 비데가 있다.
여명과 함께 날이 밝아 왔다. 방탄복으로 중무장한 수색대대 요원들이 DMZ 로 투입된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곳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 하고 있습니다'.
백학고지 초입에 안내병처럼 서 있는 팻말이 이들을 위무하고 있다. 30년 전 기자는 이곳 철책선을 지키는 군인이었다. 지금도 아들 같은 젊은이들이 철책선을 지키고 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 됐지만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진ㆍ글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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