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천재’라는 찬사를 받은 선수는 몇이나 될까. 농구에서 허재(45ㆍ전주 KCC 감독)를 꼽는다면 야구에선 이종범(40ㆍKIA) 정도가 아닐까.
‘야구천재’ 이종범이 ‘한일통산’ 2,000안타 초읽기에 들어갔다. 1993년 KIA 의 전신 해태에서 데뷔한 이종범은 국내에서 1,704개, 98년 일본으로 무대를 옮긴후 3년 반 동안 주니치에서 286개의 안타를 쳤다. 국내에서 2,000안타를 돌파한 선수는 삼성 양준혁(41)과 넥센 전준호(41) 두 명뿐이고, 한일통산 2,000안타는 이종범이 처음이다.
2,000안타에 단 10개만을 남겨둔 이종범을 18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만났다. 이종범은 “내 스스로 생각해도 대단한 것 같다. 2,000안타가 눈앞이라고 하니 감격스럽다”며 소감을 밝혔다.
2000안타는 노력의 결실
“한국에서만이 아닌 한일 합산기록이라 준혁이 형이나 준호 형과는 다르죠. 하지만 제 노력의 결실이고, 그것도 처음에 입단했던 팀에서 얻은 기록이니 정말 영광스럽습니다.” ‘야구천재’는 어린애마냥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종범은 이어 “프로야구에서 1,000경기 출전도 어려운데 2,000안타가 눈앞이라고 생각하니 자랑스럽다. 특히 2001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 10년을 더 뛰어서 이룬 기록이라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인생을 바꿔놓은 2개의 사구
광주 서림초교 3학년 때 유니폼을 입은 이종범의 야구인생은 올해로 32년째. 이종범은 두 차례의 사구(死球)가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했다. “일본 진출 첫해였던 98년 6월23일 한신의 투수 가와지리에게 팔꿈치, 그리고 국내 복귀 이듬해인 2002년 롯데 김장현에게 광대뼈를 맞은 뒤 모든 게 흔들렸어요. 그 전에는 어떤 공에도 두려움이 없었는데 두 차례 사구 이후 몸쪽 공이 무서워졌죠. 제 인생을 바꿔놓은 사구 2개인 셈입니다.”
내 인생의 은인 부모와 아내
이종범은 이계준씨와 김귀남씨의 막내아들이다. 이종범의 부모는 이종범이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야구를 시켰다. 아들의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범상치 않게 여겼던 것이다.
“저의 재능을 알아보고 야구를 하게 해준 부모님이 가장 큰 은인이시죠. 결혼 후에는 아내가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아내는 결혼할 때만 해도 야구의 ‘야’자도 몰랐는데 지금은 거의 코치 수준이죠. 식단은 말할 것도 없어요. 요리사가 따로 없다니까요.”
야구 안 했더라도 운동선수는 운명
이종범의 특기는 첫째도 공놀이, 둘째도 공놀이다. 이종범의 축구 골프 당구 실력은 프로선수 뺨친다. 타고난 스피드와 순발력 덕분이다. “야구 안 했으면 축구를 했겠죠. 저 축구도 잘해요. 공놀이라면 뭐든 좀 하거든요. 골프도 싱글 수준은 됩니다.”
가장 슬펐을 때는 유니폼 벗으라고 할 때
이종범은 2년 전 거센 은퇴 압력에 시달렸다. 2008시즌 후 구단과 코칭스태프는 이종범을 전력 외로 분류하고 은퇴를 종용했다. 이종범은 그러나 “내 스스로 결정할 일”이라며 은퇴를 거부했다.
“은퇴하라고 할 때는 ‘이제는 내가 인정을 못 받는구나.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없이 서러웠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 선택이 옳았던 것 같아요. 그때 은퇴했다면 작년에 한국시리즈 우승도 맛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선수로는 길면 내년까지
“올해 아니면 내년이죠.” 은퇴 시점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도저히 안 된다고 판단되면 은퇴할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시점이 언제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올해 아니면 내년 시즌 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유니폼은 제 스스로 벗을 겁니다.”
팬들은 영원히 내 심장 안에
스포츠 스타 중 이종범만큼 팬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은 선수도 흔치 않다. 지금도 KIA 팬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이종범’을 외친다. 주전이든 백업이든, 안타를 치든, 삼진을 먹든 변함이 없다.
“18년 동안 한결같이 이종범이란 사람을 사랑해 주셨는데, 살면서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면을 빌어서라도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저를 사랑하는 팬들, 제가 사랑하는 팬들은 영원히 제 심장 안에 있습니다.”
인천=최경호기자 squeeze@hk.co.kr
■ 아빠 못지않은 아들
‘바람의 손자’도 야구를 한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큰아들 이정후(12)군은 광주 서석초교 6학년에 재학 중인 야구선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고, 본격적인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전학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이종범은 “그 나이 때 나랑 비교하면 정후가 여러 면에서 나은 것 같다. 무엇보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며 “포지션은 투수 겸 내야수인데 센스 있는 우투좌타다. 나는 체구가 작지만 정후는 체격도 크고 체력도 좋다”며 아들 자랑에 침이 말랐다.
실제로 ‘바람의 손자’는 ‘바람의 아들’ 못지않은 소질을 보이고 있다. 정후군은 이달 초 열렸던 KIA 타이거즈기(旗) 호남지역 초등학교 야구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정후군은 이 대회에서 12타수 8안타(타율 0.667) 4타점 3도루 7득점을 올렸고, 투수로도 3승을 챙겼다.
이종범은 대선배이자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야구를 선택한 것도 정후 자신입니다. 이미 야구선수의 길에 접어들었으니 운동장에서 후회 없이 땀을 흘렸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길을 열어야지 제가 대신 열어줄 수는 없잖아요?”
인천=최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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