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시범학교 선정 공립 '낙제점'… 환경우수 사립도 곳곳 '사각'
'제2 조두순 사건'이 발생한 지 10여 일. 그간 교육과학기술부, 여성가족부, 경찰청 등 관계 부처들이 이런저런 대책들을 내놓았으나, 정작 교육당국이나 치안당국 어디에서도 그 대책에 앞서 학교 안전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한국일보는 16, 17일 이틀간 서울의 공립과 사립 각 1곳씩 초등학교 2곳을 대상으로 범죄예방 안전진단을 해봤다.
개교 3년째인 서울 송파구 공립 A초교는 지난해 시교육청이 안전교육시범학교로 지정할 만큼 시설이 좋은 곳이다. 서초구 사립 B초교는 5년 전 이전해 교육환경이 우수하고 부유층 자녀들이 많이 다닌다고 알려진 곳이다. 이들에 앞서 담장, 경비원 등이 없어 일반인이 보기에도 허술한 초교 20여 곳에 취재협조를 요청했지만 문제점이 많은 것을 자각하고 있는 듯 거부했다.
안전진단에는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EPTED) 전문가인 이상원(용인대 경찰행정학과), 이승철(혜천대학 경찰경호과) 교수가 동행했다.
열린 공간 vs 닫힌 공간
수업이 끝나지 않은 낮 12시 A초교.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정문, 운동장에 맞붙은 쪽문, 주차장 입구는 굳게 닫혀있다. 열린 후문으로 들어가 10여 개의 계단을 오르자 배움터 지킴이가 "어떻게 왔느냐"며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교내 순찰을 돌던 지킴이를 '제2 조두순 사건' 이후 이곳에 고정 배치했다는 게 학교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상원 교수는 "나무에 가려 폐쇄회로(CC)TV로도 볼 수 없는 후문 옆 급식차 이동로를 통해 운동장까지 아무 제지 없이 들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급식차가 출입하는 시간 외에는 자물쇠로 문을 잠그지만 높이가 1m에 불과해 충분히 뛰어 넘을 수 있다.
비슷한 시각 B초교. 정문, 후문, 차량출입구 등 모든 문이 닫혀 있었다. 차량출입구는 경비초소에서 출입증 확인 후에만 열어주고, 정문과 후문은 등ㆍ하교 시간에 맞춰 30분씩 개방한다. 수업 중 학교에 들어가려면 학교장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얼마 전 아이가 아프다며 경비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교실로 찾아간 한 학부모는 교무실에서 지도를 받아야 했다.
B초교의 외곽 감시는 비교적 엄격했다. 각 출입구 옆에 회전식 감시용 카메라를 설치한 것은 A초교와 같지만 무단침입자에게 바로 경고할 수 있는 스피커가 달린 것이 달랐다. 또 A초교는 CCTV 화면을 교무실에서만 볼 수 있는 반면, B초교는 교장실, 교무실, 행정실, 정문 감시초소 등 5곳에서 볼 수 있다. 울타리도 A초교는 1m 정도이지만 B초교는 2m 안팎으로 높은 데다 안쪽에 나무를 촘촘히 심었다. 취객 등 우발적 범행자가 뛰어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B초교는 인근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여 제3의 눈에 의한 감시 효과도 있었다.
교문까지 vs 부모 손까지
오후 1시 A초교. 하교시간이 되자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인솔해 교문까지 나왔다. 저학년은 부모의 손을 잡고, 고학년은 삼삼오오 모여 하교했다. 하지만 2학년 홍모(8)군은 혼자 30분째 바둑학원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 방향이 다른 4학년 최모(10)양은 혼자 길을 건너 다세대주택과 상가가 들어선 골목 쪽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아이를 유괴해 곧바로 숨거나 데리고 갈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 많다"(이상원 교수), "공원, 고가도로 밑, 공사장 등 폭행이나 강력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곳이 인근에 부지기수다"(이승철 교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오후 2시25분 B초교. 학생들이 교육동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학급별로 스쿨버스조와 부모 인계조로 나눠 줄을 섰다. 담임교사는 먼저 부모 인계조의 하교지도를 마친 후 스쿨버스조를 인솔해 각 버스에 승차시켰다. 이 때 방과 후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교실에서 대기한다.
스쿨버스 기사는 보호자가 학생을 맞는지 확인하고, 만약 보호자가 나와 있지 않으면 다른 학생의 보호자에게 인계 후 교사에게 통보한다. 스쿨버스를 이용하는 학생은 60%, 부모가 마중을 나오는 학생은 30% 정도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10%는 배움터 지킴이나 서초구청에서 파견한 봉사대인 '솜송이선생님'들이 버스 정류장까지 안내한다.
못 보고 vs 보고
A초교는 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물이 일렬 구조가 아니고 정문을 향해 열린 티읕(ㅌ)자 형태다. 조형미는 있을지 몰라도 건물 안에 꺾인 공간이 많아 사각지대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상원 교수는 "복도 한쪽 끝에서 바라보면 꺾이는 곳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CCTV 카메라도 복도 교차점에 설치돼 있지 않아 사각지대가 여러 곳 보인다"고 지적했다. 범인이 침입해 학교를 누비고 다녀도 동선을 파악하기 佇틈募?얘기다.
B초교도 디귿(ㄷ)구조로 단순치는 않지만 교무실, 교장실 등을 2층 중앙에 배치해 운동장과 교실을 훤히 볼 수 있다. 교무실, 교장실 등이 1층에 있는 A초교와 다른 부분이다. 또 복도 양끝과 교차점 등 각 층마다 CCTV 카메라를 2, 3개씩 달아 사각지대가 거의 없다. B초교에 설치한 카메라는 40여대로 A초교(17대)의 2배가 넘는다.
다만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안전조치는 A, B초교 모두 지적 대상이었다. 이승철 교수는 "화장실은 숨기 좋고, 폭행사고가 빈발하는 만큼 비상벨을 설치해 화장실 밖에서 경보음이 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엘리베이터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설치하면 범죄 예방효과가 한결 높다"고 덧붙였다.
결론은 -18점 vs +18점
종합적으로 20개 평가 항목에 대해 항목별로 미흡(-3점), 보통(0점), 양호(3점)로 평가(총점 -60~60점)한 결과, A초교는 -18점, B초교는 18점을 받았다. 100점 만점으로 봤을 때 A초교는 35점, B초교는 65점으로 30점 차이가 나는 셈이다. A초교는 20개 문항 중 절반이 미흡한 반면 B초교는 5개에 불과했다.
이상원 교수는 "A초교의 경우 아파트를 짓고 나서 자투리 땅을 활용하다 보니 안전을 생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최소한 학교만이라도 선진국처럼 범죄 예방에 효율적인 구조인지 설계할 때부터 의무적으로 검사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철 교수는 "야간에 사람이 경비를 서는 B초교에 비해 A초교는 무인경비업체에 맡겨 학교 공간이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도 높다"고 덧붙였다. 두 교수는 "공립학교 중에는 비교적 환경이 좋다는 A초교조차 이 정도라면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내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 '학교안전 평가' 범죄예방엔 무관심
우리나라 교육당국이 표방하는 '학교 안전'엔 학생들을 위한 범죄예방은 없었다. 교사(校舍) 등 학교시설 관리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폐쇄회로(CC)TV 설치, 출입자 관리 등 아이들의 범죄예방을 위해 정작 필요한 부분은 아예 평가항목에도 들어있지 않다.
20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16개 시도교육청이 연 2회 실시하는 학교안전진단평가는 시설 개ㆍ보수나 개축 여부 등 건축물 상태가 주요 대상이다. 범죄예방과 관련된 항목은 전혀 없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안전진단평가에서는 학교별로 A부터 E까지 다섯 단계로 분류하고 D등급을 받으면 심의 등을 거쳐 개ㆍ보수 결정, E등급은 즉시 철거토록 되어있다"며 "평가는 '시설'에 관한 것이어서 '교육'이나 '학교 안전망 정책'과 직접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이 1,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하는 안전교육시범학교도 교통사고 화재 시설물 안전 등이 교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 범죄예방에 대한 교육이나 관리에는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학교 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설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춰 범죄나 사고예방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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