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미술관들은 대형 사진전 차지다. 예년에도 미술계 비수기인 여름철에 사진전시가 자주 열리는 편이긴 했지만, 올해는 유난히 굵직한 전시들이 많다. 전체 미술시장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지만, 예술로서의 사진에 대한 관심은 대중적 저변이 확대되면서 점점 커지는 추세다.
거장들과의 조우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은 미국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워커 에반스(1903~1975)의 국내 첫 전시회를 열고 있다. 에반스는 작가적 관점을 이입한 새로운 시각의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20세기 사진사에 이름을 또렷이 남긴 작가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 뉴딜정책을 추진하던 루스벨트 정부의 농업안정국(FSA)은 사진가들을 고용해 농촌의 현실을 찍도록 했고, 그 중 한 명이었던 에반스는 농민들의 지친 얼굴과 남루한 생활공간을 담담하게 기록한 사진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 전시의 기획에는 에반스의 예일대 교수 시절 동료인 존 힐이 참여했다. FSA 시절의 작품을 중심으로 에반스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포트폴리오, 소형 카메라를 옷 속에 숨기고 뉴욕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몰래 촬영한 '지하철 초상' 연작 등 140여점이 소개된다. 9월 4일까지, 관람료 7,000원. (02)418-1315
서울시립미술관은 미국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만 레이(1890~1976)를 키워드로 사진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보는 '만 레이와 그의 친구들의 사진'전을 열고 있다. 만 레이는 가공과 연출, 이중인화, 리터치 등의 기법을 사용해 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탐구했던 작가다.
전시는 '현실의 기록' '창작의 세계' '허구와 상상의 세계'로 나뉘어져 있다. 각 섹션 별로 만 레이의 사진을 중심에 놓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국내외 사진작가 46명의 사진들로 전시장을 채웠다. 인물 초상과 패션 사진 등에서 출발해 사진으로 만든 조각, 연출사진 등 최근의 경향까지 아우르며 사진의 변화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도록 했다. 8월 15일까지, 관람료 700원. 같은 미술관 2, 3층에서 열리고 있는 '신의 손_로댕'전을 관람하면 무료로 볼 수 있다. (02)2124-8800
사진으로 보는 역사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25일 개막하는 '경계에서'전은 사진으로 6ㆍ25전쟁 60주년을 돌아본다. 7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국내 대표적 사진작가 10명이 전쟁에 대한 각자의 시선을 담아냈다.
원로작가 주명덕씨는 6ㆍ25의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였던 다부동전투 참전 용사들의 현재 모습을, 당시의 계급별로 담은 사진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린다. 강운구씨는 철책선 주변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출품했다. 구본창씨는 박물관에서 유물이 된 전쟁 당시의 무기와 군인들의 물품을 클로즈업했다. 이갑철씨는 강원도 최전방 지역에서 새떼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을 통해 전쟁과 기억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전투기 사이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을 통해 전쟁의 방관자가 된 우리의 모습을 풍자한 난다의 합성 사진, 일반 사병들의 초상을 통해 인간의 외로움을 조명한 오형근씨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8월 20일까지, 관람료 1,000원(고교생 이하 무료). (02)720-0667
세종로 일민미술관의 '격물치지(格物致知)'전은 한국 전통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자리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강제욱 고정남 박정훈 오석근씨 등 사진작가 11명이 전국의 자연경관과 고궁, 사찰, 문화재, 풍속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같은 제목의 책도 나왔다. 8월 22일까지, 무료. (02)2020-2060
7월 23일부터 강원 영월군에서 열리는 제9회 동강국제사진제도 분단 상황을 돌아보는 '전쟁이 남기다' 등 8개의 전시를 연다. 이밖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퓰리처상 보도사진 부문 수상작을 모은 전시가 22일 시작되고, 평창동 가나아트센터가 매년 개최하는 포토페스티벌도 8월 6~29일 열릴 예정이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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