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대전 유성구 SK에너지 기술원의 '그린 폴(Green Pol)' 파일럿 플랜트(시범 공장). 난마처럼 꼬여있는 수 백 개 파이프라인 끝에 좁쌀만한 크기의 금빛 알갱이가 쏟아지고 있다. 플라스틱 원료로 쓰이는 보통 수지처럼 보이는 이 알갱이의 주 원료는 다름 아닌 이산화탄소(CO2). 기체라는 것도 의외였지만 지구 온난화를 불러 일으키는 이산화탄소가 친환경플라스틱 소재로 탈바꿈한다는 게 신기했다.
김동섭 기술원장은 "독자적인 촉매 기술을 활용, 이산화탄소(44%)를 폴리프로필렌옥사이드(56%)와 섞어 친환경 플라스틱 재료로 만든 것"이라며 "폴리염화비닐(PVC)이나 폴리스티렌은 불에 태우면 그을음이나 유해 가스가 생기지만 그린 폴은 물과 이산화탄소로만 분해돼 친환경적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머지 않아 건축 내장재, 인조가죽, 제품 포장재 등에서 PVC를 대신할 신소재로, 2025년에는 시장 규모가 26조원까지 커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회사측은 올해 안에 울산 산업단지 안에 그린폴의 상업 생산을 위한 공장을 착공할 계획이다.
기술원의 500여명 연구진은 편광필름(TAC), 연성회로원판(FCCL), 그린 콜(저급 석탄을 합성가스로 전환해 합성 석유 등을 만드는 기술), 바이오 부탄올 등 SK에너지의 미래를 책임질 40 여 개 신기술에 대한 담금질에 한창이다. 모든 신기술은 각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사업성과 현실성을 철저히 검증 받고 파일럿 플랜트에서 실제 제품에 적용해 본 뒤 상업 생산에 들어간다. 지난 달 상업생산에 들어간 중대형 2차 전지도 마찬가지였다. 전기자동차나 하이브리드자동차의 동력원으로 쓰이는 2차 전지는 2005년부터 5년 가까운 연구개발 끝에 지난달 말 생산 라인이 완공됐다. 김상범 배터리개발팀장은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모든 공정을 국산화했다"며 "기술 독립 없이는 세계 시장을 이끌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SK에너지는 '기술에 토대를 둔 성장'이라는 전략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구자영 사장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편하게 돈 벌 수 있는 분야보다는 기술력으로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이길 수 있는 사업을 핵심 분야로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 사장은 그 이유에 대해 산유국이 직접 정유, 화학 공장을 세워 제품을 만드는 등 에너지 시장이 급변하고 있어 여기에서 대변혁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조차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SK에너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미래 성장의 화두로 삼고 몇 년 전부터 심혈을 기울여 왔다는 것. 구 사장은 "그린 폴, 리튬이온 배터리, 바이오 부탄, 그린 콜 등을 모두 5년 안에 상업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1월1일 시작되는 정유ㆍ석유화학 부문의 독자경영체제 역시 시장 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구 사장은 강조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피드'"라고 말한 그는 "사업 특성에 맞는 경쟁력과 유연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기술을 집중적으로 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 사장은 또 "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세계 시장의 뛰어난 파트너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가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솔사를 찾아 이 회사의 청정석탄 상용화 기술과 SK에너지 공정 기술의 협력을 논의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최근 페루와 에콰도르 등도 방문한 구 사장은 "앞으로는 아직 기회가 많은 남미 지역을 집중 공략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전=박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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