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에 '길 위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시인 정일근(52ㆍ사진)씨가 지난 17일 울산 바다에서 참돌고래 떼를 발견, 생생한 글과 사진을 함께 보내왔다.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 대표로 고래문학제를 개최하는 등 고래 보호활동을 벌이는 정씨는 울산시 어업지도선에 목측(目測)조사관으로 승선, 고래탐사에 나서고 있다.
"좌현, 고래!" 내가 고함을 질렀다. 지난 17일 오전 11시 22분이었다. 울산시 어업지도선(17톤급)이 15노트의 속도로 장생포항을 떠난 지 2시간이 넘도록 '고래바다'에서 고래를 발견하지 못해 지쳐가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밍크고래 2마리가 미끈한 제 몸을 보여주었다.
3년 넘게 고래탐사에 참여하며 밍크고래를 수십여 마리 보아왔지만 이날처럼 고래가 완벽하게 제 몸을 보여준 것은 처음이었다. 10m 정도 크기인 밍크고래의 유영은 마치 바다 위로 떠오른 잠수함을 보는 것 같았다.
행운이 행운을 부르듯 고래도 고래를 부른다. 10분쯤 더 북상하자 멀리서 하얀 물거품이 일고 있었다. 그건 돌고래 떼가 있다는 신호다. 돌고래들이 만들어내는 물거품과, 흰 거품이 이는 백파(白波)는 다르다. 그걸 구별할 줄 알아야 고래조사에 참여할 수 있다. "고래다. 고래다." 고래탐사의 책임을 맡고 있는 울산시청의 박승철(53)씨가 환호성을 외쳤다.
울산시 북구 신명리 동방 11.5마일, 북위 35도38분86초 동경 129도42분27초의 동해에서 돌고래의 대표 격인 참돌고래 떼의 장관을 만났다. 대략 계산해도 2,000마리가 넘었다. 배가 다가가자 갈매기 떼가 하늘 위로 치솟아 오르면서 참돌고래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최근 울산 바다에 도루묵, 꽁치 등의 어장이 형성되자 참돌고래 떼도 따라서 찾아왔다. 돌고래도 회유하는 동물이라 먹이를 따라 떠났는가 싶었는데 참돌고래 떼는 여전히 울산바다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참돌고래 친구들을 가까이에서 카메라에 담는 '선물'을 받았다.
우리가 발견한 참돌고래는 지난 2008년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소장 문대연)가 고래들의 장례의식을 촬영, 전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주인공들과 같은 종류의 돌고래다. 참돌고래로 사람 못지않은 동료애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다에서 돌고래 떼를 지켜본 사람은 안다. 그것은 마치 바다가 연주하는 '소나타'를 듣는 것과 같다는 것을. 참돌고래들이 살아있는 음표처럼 튀면서 장엄한 연주를 들려준다. 그 연주에 따라 환호성을 지르다 보면 누구든 목이 쉬어버린다.
안타까운 것은 이 참돌고래를 농림수산식품부는 '먹거리'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참돌고래를 잡아먹자고 한다. 돌고래든 고래든 모두 바다에서 만나는 생명이며 희망이다. 지금 울산 고래바다에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소나타가 연주되고 있다.
글ㆍ사진 정일근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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