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피해자의 가족은 분노한다. 그들은 대개 사형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내 손으로라도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울부짖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살인 피해자 가족들이 있다. 이들은 한국의 살인 피해자 가족에게 조언했다. "사형제 폐지는, 용서는, 범인이 아닌 나를 위한 것입니다."
20일 미국의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MVFHR)' 버드 웰시 이사장 등 세 명의 회원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의 초청으로 방한, 한국의 사형제 폐지를 촉구했다. MVFHR은 미국의 범죄 피해자 가족 모임으로 2004년 창립된 민간 기구다.
이들은 먼저 사형제 폐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1995년 오클라호마주 연방청사 폭파로 딸을 잃은 웰시 이사장은 "사형은 범죄를 줄이는 실질적인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형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일 가능성도 있죠"라며 미국에서 지금까지 사형 선고 후 무죄로 밝혀진 사람이 139명이라는 근거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는 피해자 가족들이 사형을 복수의 일환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어떻게 가족의 살인자를 복수가 아닌 용서의 마음으로 보고, 사형제 폐지를 말할 수 있을까. 웰시 이사장은 그것이 범인에 대한 용서가 아님을 강조했다. "5년의 긴 시간 동안 괴로워하면서 결국 깨달았어요. 용서란 범인이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요."
1997년 범죄로 아들을 잃은 로버트 켈리씨는"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사형제가 반대하는 것이 나와 내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사형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돼요"라고 거들었다
실제 오클라호마 사건 6개월 후 피해 가족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85%가 사형제를 지지했다. 하지만 범인 중 한 명의 사형 집행이 이뤄진 6년 후 조사에서는 50% 수준으로 지지율이 급감했다. 웨시 이사장은 "사형이 나를 홀가분하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나를 슬픔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피해자들 대부분이 공감했어요"라고 말했다.
강도에게 본인이 목숨을 잃은 뻔 했던 토미 카자미씨 역시 "증오와 분노를 이기는 것이 오히려 자유로워지는 길이고, 살아남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밝혔다.
웨시 이사장 등 세 명은 이날 오후 강호순 사건의 피해 가족 등을 만났다. 22일 오후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서울 조계사에서 사형제 폐지의 필요성을 강연할 예정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