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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정대세의 조국과 모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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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정대세의 조국과 모국

입력
2010.06.2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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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북한 대표팀 정대세 선수의 눈물이 화제가 되고 있다. 26세의 이 혈기방장한 젊은이가 보여준 감수성 못지 않게 눈길을 끈 것은 그가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 국적의 북한 축구대표라는 이채로움이다. 그보다 더 주목에 값하는 것은 그가 남북에도, 일본에도 완전히 뿌리 내릴 수 없는 재일동포라는 '숙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화해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 세 나라의 긴장관계에 작은 돌파구를 열어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자이니치'는 보듬어 안을 숙명

한국적 아버지, 조선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정대세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 학교는 조총련계 아이치(愛知)조선중고급학교와 조선대학교를 나왔다. 일본에서는 민족 교육에 열심인 조총련계 학교 숫자가 민단 계열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민족교육을 고집하는 부모라면 국적이 한국이더라도 조선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북한 편향인 조선학교 교육을 받으며 정대세는 발군의 축구 실력을 북한 대표팀에서 발휘하고 싶어졌다. 이미 북한 대표로 활약하는 재일동포 선수들이 부럽기 짝이 없었다. 결국 어떻게 해서라도 국적을 '조선'으로 바꿀 결심을 하지만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일본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실력을 아까워한 조총련계 재일본조선인축구협회 등의 도움으로 한국적으로 북한 대표 선수가 될 길이 열렸고 2007년 입단을 결정했다. 지금까지 3년 동안 북한 대표 선수로 22경기를 뛰어 15득점을 올렸다. 힘 넘치고 머리회전 빠르기로 소문난 이 스트라이커는 경기 말고도 북한 대표팀에서 또 하나 역할이 있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유럽 진출을 염두에 두고 해온 영어 공부 때문에 북한팀에서 외국 언론 인터뷰에 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월드컵 첫 인터뷰에서도 대표팀의 일원답게 그는 북한 체제를 선전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만 봤다면 누구라도 정대세를 전형적인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한 사람으로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대결과 갈등이라는 낡은 남북 관계의 도식으로만 재단할 수 없는 면모를 발견한다. 재일동포 축구 저널리스트 신무광씨가 쓴 (한국에서도 최근 로 번역 출판됐다)에서 정대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모든 사람에게 뭔가 주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은 꿈이 있지 않을까요. 제게는 우연찮게 '재일(在日)'이라는 주제가 주어졌어요. 그렇다면 그 숙명을 보듬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죠.'

2년 전 인터뷰에서는 "스포츠엔 국경이 없다"며 "나라가 아무리 어려운 일에 처해 있더라도 그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축구가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구단의 스카우트 제의가 있으면 "조건을 보고 인기 있는 팀으로 가겠다"며 한국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남북화해 물꼬 틀 수도

북한 핵실험과 천안함 사태 등으로 남북ㆍ 북일 관계가 경색일로다. "북한을 부모와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태어난 일본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일본사람들과 가라오케에 가면 꼭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다는 정대세의 삶에서 남북한, 일본이 소통하고 이해할 단초를 발견할 수는 없을까. 그러고 보면 불과 몇 년 사이 한일 관계가 이만큼 성숙해진 것도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이 돌파구였다는 생각이 든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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