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누비구름 한 주비,
장항리사지 석탑 기단부에 기대어 마음껏 잠들다 기지개 펴던 짐승 따위라 생각했다만
누비구름 펼치니 하늘가 식구들의 하루치 생활이라네
토록 새끼가 혓바닥 쑥 내밀어 한 줌 백설기 공기를 혀로 맛보니 온통 콩켸팥켸
느리 아비가 낼름 나꿔채어 제 입 속이 먼저 불룩하니 근처 각다귀 구름이 푸릉푸릉
화초머리 어미가 부자지간을 타잡느라 풀치마를 들썩거리니 팔느락팔느락
이번 여름도 지독히 덥겠구나
시집 못 간 딸을 조참조참 따라다닐 새 누비구름 일가는 한껏 부풀어
곧 소나기 채비를 차려야겠다
● 지난 주말, 독서를 좋아하는 시각장애인분들과 함께 양평군 수종면 황순원문학관에 놀러 갔습니다. 서로 재미있게 떠들고 나서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뜰로 나갔다가 그만 소나기 세례를 맞아 온몸이 다 젖었습니다. 여름 날씨, 참 알 수가 없군요, 라고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라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문학적 빗줄기를 맞아보라고 문학관에서 설치한 소나기 분수였습니다. 덕분에 잠시나마 소나기 정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빗속을 걸어가는 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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