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 '10'과 '26'은 몇 발의 총성과 연관된, 대단히 특별한 숫자이다. 1979년 10ㆍ26이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을 야기했다면, 1909년의 10월 26일은 자유의 함성을 온축하고 있었다. 100년 전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민족의 적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지만, 범부였던 그의 아들 안준생은 그 대가로 잔인한 세월을 이겨내야 했다. 월간 객석과 국립극장이 함께 만드는 연극 '나는 너다'는 두 부자를 독특하게 조망할 기회를 준다.
작가 정복근, 연출자 윤석화, 배우 박정자 송일국씨 등의 화학적 결합이 어떤 결과를 일궈낼지 우선 대중적 관심이 모아진다. 이들은 지난해 8월의 무더위 속에서 하얼빈, 뤼순 등지의 관련 유적을 답사하는 등 준비 과정부터 화제를 모았다. 주역 배우와 극중 인물의 유사성 또한 화제다.
작가 정복근씨는 "당시 상황에서 가족들이 감추고 싶어했던 아버지 안중근, 그로 인해 굴절된 삶을 살아야 했던 아들 안준생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고 요약했다. 안 의사의 거사 현장 답사에 동참했던 박정자씨는 "생생한 안중근의 어머니 상을 연기하기 위해 한여름에 현장을 찾았던 그 뜨거움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줄 의무감을 느낀다"며 애정을 보였다. 연출자로 나선 윤석화씨는 "거룩하고 강렬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아들이 보인 비굴한 삶을 통해 우리 모습을 반성케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 1인 2역을 맡은 송일국씨는 "밖에서는 영웅이지만 식솔조차 못 돌본 안중근 의사의 모습에서 할아버지(김좌진 장군)가 절로 생각났다"며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가상의 마지막 대사는 바로 나의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누구를 위해서?"라는 물음에 "너를 위해"라고 답하는 대사다. 송일국씨를 무대에 세운 윤석화씨는 "송씨를 몇 차례에 걸쳐 '이 역을 맡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설득한 끝에, '연극은 모르지만 믿고 가겠다'는 답을 결국 이끌어 냈다"며 "그가 조부 때문에 겪어야 했던 생활고의 경험 때문에 결심을 굳힌 듯 하다"고 말했다.
원래 이 작품은 뮤지컬로 만들어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안중근의 삶을 뮤지컬화한 '영웅'이 먼저 제작됨으로써 연극으로 선회했다. '덕혜옹주' '나, 김수임' 등의 작품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극화하는 데 강점을 보여준 정복근씨의 대본은 철저한 사실의 고증과 함께 연극의 깊은 맛을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공연 장소로 결정된 국립극장 KB하늘극장 특유의 공간적 개성이 무대에 더욱 힘을 싣는 데 한몫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황량한 벌판의 이미지는 원형 무대로, 각종 영상과 배우들의 태껸 무술 등은 풍성한 볼거리로 다가온다. 이 연극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지난 9일 열린 제작발표회 현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강신일, 송영창, 원근희 등 출연. 7월 27일~8월 29일. (02)3672-3001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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