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랑 지음 / 뿔 발행ㆍ276쪽ㆍ1만1,000원
'유쾌하고 능청맞은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이명랑(37)씨의 신작 소설집 엔 재수없는 인간 군상이 득실댄다. 뭘해도 허당인 이들이야 희극의 단골 주역이지만, 그 불운이란 게 이번엔 너무 지독하다.
첫머리에 실린 '끝없는 이야기' 속 일가족만 해도 그렇다. 오빠에게 대학등록금을 털린 딸은 아르바이트를 나갔다가 편의점으로 돌진해온 차에 치여 숨진다. 농약병을 들고 "엄마 죽는 꼴 볼래?"를 입버릇 삼던 엄마는, 가난을 자책하다 정말 그 병을 콱 들이킨다. 통장 잔고에 고작 199원만 남은 것을 확인한 아들도 오토바이를 몰다 변을 당한다.
작가가 예의 걸쭉한 입말과 익살스런 상황으로 빚어낸 결말이란 게 일가족 몰살이라는 끔찍한 비극이다. 독자는 제대로 뒤통수를 맞는 셈인데 작가는 마지막까지 이 파국을 눙친다. "특별한 것(사건)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심드렁하게 형사가 말한다. "매일 터지는 게, 그게 다 그거지." 일가족의 비극은 김모 혹은 최모씨가 주어인 사회면의 단신 기사로 건조하게 파편화된다.
8편의 단편이 실린 가 디디고 선 곳은 바로 '어이 없는 개죽음'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신문 사회면의 사건ㆍ사고의 세계다. 매일같이 우리 삶을 덮치는, 우연과 불행으로 뒤덮인 '지랄 맞게' 악몽 같은 곳이다. 단편 '어느 신도시의 코르니게라'에선 그 세계를 TV로 보며 혀를 끌끌 차던 한 여성이 바로 그 모든 불행을 뒤집어쓴다. 남편은 크리스마스 알전구 과열로 인한 화재로 숨지고 딸 아이는 호스에 목이 졸리고, 아들은 차 바퀴에 목도리가 걸려 질식사한다. 아들을 숨지게 한 운전사는 항변한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사고였어요!"
그러니까 누가 가해자인지도 알 수 없는, 불가해한 세계다. 느닷없이 영장이 나와 군대에 다시 가게 된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 '어느 휴양지에서'처럼 때론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들기도 한다. 이 세계가 팩트(사실)로만 가득 차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마저 모호해지는 공간이란 얘기다.
그 모진 삶의 풍랑에 속절없이 당하고 마는 이들은 다름아닌 가난하고 헐벗은 서민들이다. 그들을 보호하는 게 있다면 법이나 정부겠지만, 이명랑 소설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그 무서운 법대로 해결하라니, 꼼짝없이 죽으라는 말 아니오?"('황영웅 남근 사수기'에서).
이명랑씨의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설핏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지만, 어느 순간 그 웃음은 그냥 웃는 것이 아니게 된다. 1989년 데뷔한 작가는 그간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는데, 는 그가 3년 만에 낸 두번째 단편소설집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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