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계 간판스타 이창호(35) 9단과 11살 연하의 예비신부 이도윤(24)씨가 지난 15일 한국기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10월28일 결혼한다고 발표했다.
이 9단은 "저도 나이가 꽤 됐는데 더 늦기 전에 다행히 좋은 짝을 만나 기쁘다. 망설이다 또 해를 넘길 것 같아 양가 어른들이 서둘렀다. 아직 결혼 날짜 외엔 아무 것도 확실히 정해진 건 없다. 바둑으로 치면 일단 저질러 놓고 수습할 생각인 셈"이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도윤씨는 "어릴 때부터 우상이었던 이 국수님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다니 너무나 마음이 설레고 기쁘다. 언제나 한결같고 변함없는 모습에 평생을 믿고 의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창호ㆍ이도윤 커플의 첫 만남부터 결혼 발표까지 2년 간의 러브스토리를 소개한다.
2008년 5월 한국기원 3층 기자실에 늘씬한 키에 환한 웃음이 매력적인 미녀 한 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며칠 전 인터넷바둑사이트 사이버오로에 입사한 이도윤 기자라고 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4학년으로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을 한 셈이다. 알고 보니 한때 프로기사를 지망해 연구생 1조까지 올라갔던 아마 강자였다.
아마 강자 출신의 바둑 여기자 등장
햇병아리 기자 이도윤은 무척 의욕적이었다. 부지런히 기사거리를 찾아 대국 현장을 쫓아 다니며 새내기답게 취재원에게 마구 들이댔다. 바둑동네는 매우 좁은 곳이다. 이도윤의 일거수일투족이 즉각 바둑가 참새들의 입방아에 올라 '덜렁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급기야 '돌부처'의 귀에도 들어가 가끔씩 대국장에서 눈에 띄는 이도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돌부처와 덜렁이 기자가 가까이서 처음 만난 건 2008년 9월 삼성화재배 본선대국이 열렸던 대전시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이었다. 물론 이창호가 선수로 출전했고 이도윤은 취재차 현장을 찾았다. 더욱이 이번에는 월간 바둑에서 이창호의 대국을 상보로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았기 때문에 좀더 밀착 취재할 필요가 있었다.
본선 대국은 하루 걸러 벌어지는데 마침 쉬는 날 동료기사들이 축구를 하는 동안 이창호는 홀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도윤이 '이때다' 하고 다가가 수줍게 인사를 건넸더니 뜻밖에 이창호가 "사이버오로의 이도윤기자죠"라고 아는 체를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한참 동안 이도윤의 이런저런 질문에 전혀 귀찮아 하지 않고 자상하게 대답해 주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우상이자 마치 저 하늘 높은 곳에 있는 존재처럼 여겼던 '이 국수님'과 이렇게 가까이서 대화를 나누다니 너무나 기쁘고 즐거웠다.
한편 이창호도 당시 이도윤에게 첫 눈에 필이 꽃혔던 모양이다. 돌부처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만난 지 불과 며칠 만에 도윤의 집 앞 벤치에서 키스를 하는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니 말이다. 바둑동네서는 전통적으로 강자가 어른 대접을 받는다.
특히 이창호는 어릴 때부터 타이틀 보유자인데다 행동거지가 진중해서 기원 관계자들도 상당히 어려워하는데 이도윤은 달랐다. 워낙 붙임성 있는 이도윤은 전혀 스스럼없이 이창호에게 다가갔고 이창호는 그 점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후일 이창호는 "당시 도윤이의 해맑은 모습에 끌렸다"고 말했다.
대화 도중 이창호가 책읽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이도윤이 며칠 후 책을 한 권 선물했고 이에 대한 답례로 이창호가 밥을 사게 된 것을 계기로 두 남녀의 만남이 시작됐다. 그러나 아직은 초반 포석 단계로 사랑이라 말하기는 일렀다.
바둑팬들 관심 속 사랑 키워
얼마 후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 왔다. 매년 개천절에 태백산 천제단에서 열리는 산상특별대국에 이창호와 유창혁이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도윤도 다른 기자들과 함께 동행 취재를 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태백산 정상까지 세 시간 가량 함께 산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서로 아끼는 마음이 좀더 깊어졌다.
이후 두 사람은 자주 만나 식사도 하고 영화나 연극을 관람했다. 주로 강남에서 많이 만났으나 때로는 기원 주변에서도 함께 있는 모습이 종종 목격됐다. 11월 초에는 제주도에서 열린 LG배 본선대국에 역시 '기사와 기자'로 참가한 두 사람이 야밤에 동시에 행방불명돼 '둘 사이에 뭔가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드디어 11월말께 두 사람이 연인 사이라는 게 매스컴에 공개됐다. 이후 과연 두 사람이 순조롭게 결혼으로 골인할 지, 그렇다면 디데이는 언제일 지에 바둑계의 관심이 모아졌다.
한편 교제 사실이 공개된 후 두 사람의 만남은 당연히 더 잦아졌다. 더욱이 작년에 이창호가 부모님과 함께 이도윤의 집 근처인 강남구 일원동으로 이사하면서 가까운 대모산에 함께 오르며 사랑을 키워 갔고 서로의 믿음도 깊어졌다. 데이트 도중 돌부처의 연애 사실을 알고 있는 바둑팬들의 흐뭇한 눈길이 두 사람을 스쳐 가기도 했다.
두 사람이 만난 지 1년여가 지나면서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이제 결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행마가 신중한 이창호는 전혀 이에 대해 말이 없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창호에게 결혼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항상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 작년 11월 농심배 전야제 석상에서 처음으로 "내년 쯤 결혼 예정"이라고 짧게 털어 놓았다.
이창호의 장고(?)…예비 장모님이 나서다
그런데 올 1월 바둑대상 시상식에서는 사회자가 이창호에게 "언제쯤 국수를 먹여 주겠느냐"고 묻자 뜻밖에 "원래 결혼이란 게 막상 결혼식장에 들어갈 때까지는 확실히 알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대답해 갑자기 장내를 긴장시켰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창호가 모처럼 조크를 한 것인데 워낙 평소 언행이 진중한 사람이다 보니 당시 참석자들 사이에 '이창호의 애정전선에 뭔가 이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3월 농심배 우승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계속 잘 만나고 있다. 결혼은 올해 안에 할 수도 있고 조금 미뤄질 수도 있다"고 밝혀 모든 오해를 불식시켰다.
예비신부 이도윤도 너무나 신중한 이창호의 행보에 적지 않게 속을 태웠다. 취재차 바둑 모임에 나갈 때마다 저마다 한 번씩 "잘 돼 가냐"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묻는데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난처했던 것.
이창호가 항상 "말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했고 그동안 만남을 통해 상대의 진심을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지만 만난 지 2년이 다 되도록 이창호가 딱 부러지게 결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엔 회사도 그만두고 라식 수술도 받고 요리학원에 등록하고 장롱 면허를 다시 꺼내 운전 연수를 받는 등 나름대로 신부 수업을 하며 '이 국수님'을 내조할 준비를 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결혼의 '혼'자도 비치지 않으니 직접 물어 볼 수도 없고 그저 혼자서 애만 태웠다. 끝내 이번 결혼 발표 때까지 정식 프로포즈는 받지 못했다.
답답하기는 양가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2년 넘게 두 사람의 교제를 지켜 보면서 이제나 저제나 스스로 결정하기를 기다렸지만 전혀 진척이 없자 급기야 부모님들이 팔을 걷어 부쳤다. '이대로 놔 두었다가는 또 해를 넘기겠다'는데 의견이 모아졌고 서둘러 6월초에 어른들 주도로 상견례를 치렀다.
이후 예비장모가 곧바로 결혼날짜까지 받아와 지난 14일 신랑집에 전했고 이창호로부터 "좋습니다"라는 답을 받았다. 이튿날 이창호가 기전 일정과 겹치지 않도록 한국기원 기전부 관계자에게 결혼예정일을 알림에 따라 '돌부처의 결혼 소식'이 만천하에 알려졌고 보다 자세한 내용을 궁금해 하는 매스컴의 문의가 빗발치자 15일 공식 기자회견을 갖게 된 것이다.
워낙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막상 결혼 날짜는 잡았지만 아직 결혼식장도 정해지 못한 상태다.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 지, 새 보금자리는 어디에 꾸밀 지 모두 미정이다.
다만 결혼은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만 모시고 아주 간소하게 치를 생각이다. 누구는 초청하고 누구는 초청하지 않을 수 없어 바둑계에도 일체 초대장을 보내지 않을 예정이다. 그래서 결혼 날짜도 아예 평일로 정했다.
"그동안 저를 아껴 주신 여러분들께 매우 죄송스럽지만 제가 너무 떠들썩한 분위기에 잘 적응을 못하는데다 아버님이 조금 편찮으시기도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으나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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