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투기꾼·자선사업가 두 얼굴… 통 크게 벌고 통 크게 쓴다
"헤지펀드가 유로화에 공격을 퍼붓고 있다(Hedge Fund Pounds Euro)"
지난 2월 25일 월스트리트저널 1면에 섬뜩한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조지 소로스가 운영하는 펀드를 포함한 초대형 헤지펀드 관계자들이 2월 초 뉴욕 맨해튼에서 비밀회의를 가?고, 유로화 폭락에 베팅해 큰 돈을 벌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남유럽 재정위기가 계속되며 유로화는 폭락을 거듭했고, 결국 지난해 말 1.5달러와 교환됐던 1유로의 가치는 최근 1.2달러 전후까지 떨어졌다.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이 기사의 헤드라인을 통해 편집자가 노린 것은 자명했다. 독자들에게 '검은 수요일'을 연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중앙은행을 굴복시킨 사나이
'검은 수요일'이란 1990년 10월 유럽환율제도(ERM)에 가입했던 영국이 2년 뒤(92년9월16일) 헤지펀드의 파운드화 매도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ERM에서 탈퇴한 영국판 외환위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날 영란은행은 보유 외환을 대규모로 투입해 파운드화를 매수하고 기준금리도 하루 두 차례나 인상했지만, 하루 동안 무려 100억달러어치 이상의 매도 포지션을 취한 소로스의 공격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한 달 후,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파운드화 폭락으로 10억달러를 번 사나이'로 소로스를 지목했고, 그는 '하루 만에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환 투기꾼'이라는 악명을 얻게 된다.
이후 각국에서 통화위기가 발발할 때마다 소로스는 배후로 지목돼 왔다.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소로스가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을 허용한 데 불만을 품고 의도적으로 태국 바트화, 말레이시아 리기트화 등 아시아 통화를 공격했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최근 유로화 폭락 사태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수장들도 "투기세력에 맞서 유로화를 지키겠다"며 소로스 같은 헤지펀드 세력을 '악(惡)의 축'으로 묘사하고 있다.
야누스의 얼굴
소로스는 한편에선 악마로 불리지만 다른 한편으론 천사의 얼굴을 지닌 세계적 자선사업가이기도 하다. 포브스 억만장자 리스트에서 그의 올해 재산은 140억달러, 순위는 35위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가 살아오면서 여태까지 기부한 총 액수는 72억달러로 빌 게이츠(280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다. 부자 순위 3위인 워런 버핏은 앞으로 20년 간 총 300억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까지 기부 액수는 67억달러로 오히려 소로스에 못 미친다.
투기만큼이나 공격적인 소로스의 자선사업은 빈곤 퇴치나 환경 보호 등 일반적인 자선단체의 목표와는 달리 강한 정치적 동기에서 진행됐다. 이는 그의 파란만장한 유ㆍ청년기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44년 나치가 유대인 탄압을 시작하자 수용소행(行)을 피하기 위해 공무원의 양자로 입적, 혈통을 숨기기도 했다. 47년 헝가리가 공산화되자 영국으로 떠난 그는 짐꾼, 웨이터 등으로 일하며 학비를 벌어 런던정경대(LSE)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특히 철도 노동자로 일하다 부상 당했을 때 사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 그는 병실에 누워 "나중에 성공하면 반드시 자선사업을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정치성 짙은 자선사업
그는 재학 중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란 저서로 유명한 철학자 칼 포퍼의 가르침을 받고 큰 감명을 얻어 이후 '열린 사회'라는 개념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주된 타깃은 자신의 고향인 공산주의 체제 하의 동유럽이었다. 69년 짐 로저스와 함께 설립한 퀀텀펀드가 10년 간 연평균 35%의 전설적인 수익률을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두자, 소로스는 79년 '열린사회기금'을 창설하고 84년에는 헝가리에 소로스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동유럽 각국에 설립된 소로스재단의 지원을 통해 수많은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서구 자본주의 국가로 유학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들은 공산권 붕괴 과정에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순조로운 체제전환을 주도하는 리더가 되었다.
2004년 미국 대선을 앞둔 2003년 11월, 소로스는 돌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을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이라도 내놓겠다"며 낙선운동에 뛰어든다. 이라크전을 강행하고 국제질서를 어지럽힌 부시 전 대통령을 '열린 사회의 적'이라고 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치사회단체에 수백만달러씩 기부하고 "우리는 왜 부시의 재선을 막아야 하는가"를 주제로 전미 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다음 주에는 하편이 이어집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