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6강 길목에서 한국이 충격의 패배를 당했다. 아르헨티나에 내준 어이없는 4골에 모두가 망연자실할 뿐이다. 그러나 희망이 사라진 건 아니다. 우리의 역사가 그렇듯 우리는 충격을 딛고 극복의 힘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바로 6ㆍ25가 그렇고 IMF가 그렇다. 어떤 의미에선 이 충격이 맹독주사나 보약이 될 수도 있을 터. 한국축구의 문제가 바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비치는 것 같다.
그리스를 완파한 첫 출발은 아주 기분 좋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기뻐했고 해외 언론도 찬양일색이었다. 그러나 때 이른 도취는 언제나 위험하다. 우리가 너무 흥분하여 일희일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 축구는 오랜 세월의 세계 도전에서 늘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야 놀라운 힘을 보여주곤 했다. 60년 전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 때도 마찬가지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 차리면 된다는 가르침을 떠올리게 한다. 위기 상황에서의 응집력이 중요한 이유다.
이번 월드컵에 남북한이 처음 나란히 참가한 데 대해 세계는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8년 전 부산항에서의 '행복한 남북어깨동무'와 견줄 일은 아니지만 '함께 16강에 가자'는 다짐을 지켜볼 일이다. 대한민국 국적이었던 북한 골게터 정대세는 그들의 본선행을 도와준 한국 선수들의 동포애에 감사 인사를 표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엔 브라질에도 주눅들지 않는 용맹과 투지, 당당함을 보여주었다. 월드컵의 평화메시지가 어둠 속 북녘 땅에 어떤 빛을 전할지, 이 땅의 한 맺힌 비극을 덮고 천안함의 '분노'까지 잠재울 수야 없겠지만 위기 극복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여름과 겨울 올림픽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보여준 놀라운 성취를 통해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공감했을 터, 이미 세계의 주목을 모았던 붉은 악마의 뜨거운 열정이 우리의 문화코드로서 자리 잡은 바 있기에 또 한 번 하나 된 애국심의 태극물결을 보고 싶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 앞서 서울광장을 찾아가 보았다. 그곳에는 보수도 진보도, 세대차도 없는 통합의 합창이 있었을 뿐이다.
4년 전 여름엔 덴마크를 거쳐 체코로 가는 길에 베를린을 방문, 월드컵 열기를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정치ㆍ사회 문제에까지 냉정하고 이성적인 그들이었지만 월드컵 열병은 예외가 아니었다. 동서독 통합 이전의 월드컵이 그러했듯이 그들에게 이데올로기나 정치노선의 충돌은 보이지 않았다. 그라운드의 폭풍처럼 모든 갈등을 잠재우는 힘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과연 월드컵 선진국인 프랑스나 독일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월드컵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한다. 단순한 축구게임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이제는 훌리건의 집단히스테리처럼, 또는 지구의 거대한 생명체와도 같이 사회문제를 분출하기도 하고 내일로 나가는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기도 한다.
지금 세계는 또 한번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 레퀴프 지는 "조심하라 한국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밴쿠버에서의 대승리에 이어 남아공 고원에서 또다시 겁 모르는 한국 젊은이들의 무한도전을 보고 싶다. 자, 이제는 월드컵을 즐기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스포츠의 도전정신을 통해 무언가 배워야 한다. 그리고 미래를 열어가는 통합정신을 보여줄 때다.
이태영 대한언론인회 부회장·경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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