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대우증권의 사내 변호사 채용에는 5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단 한 명을 뽑는 채용이었지만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한 새내기 변호사들이 대거 지원한 것. 한 대형 증권사의 A법무팀장(변호사)은 “200년 입사할 때만해도 변호사만 ‘OK’하면 바로 입사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지원자수가 워낙 많아져 입사문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변호사들이 여의도로 몰리고 있다. 서초동 법조타운을 넘어 증권가로 향하는 변호사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자본시장이 커지면서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들의 법률 자문 수요가 증가한 데다, 미국 월가의 변호사처럼 우리나라도 ‘증권전문 변호사’를 희망하는 변호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 변호사들은 현장실무 경험을 위해 과거보다 크게 낮아진 처우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자세다.
수적 팽창
10년 전만해도 여의도 변호사는 대형증권사 정도에만 1명 정도씩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 대우증권 10명, 삼성증권 7명, 한국투자 우리투자 신한투자 미래에셋증권 등에도 각 4~5명의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다. 대우증권의 경우 자본시장법 도입 직후인 지난해 2월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 2명을 뽑은 데 이어 올 초엔 신입 및 미국 변호사를 각 1명씩 채용했다.
증권가 변호사가 늘면서 지난해 9월에는‘여의도 사내 변호사회’라는 모임도 조직됐다. 회원 160명 중 100여명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소속이다. A변호사는 “2002년에는 모든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를 통틀어 7~8명에 불과하던 사내 변호사 수가 지금은 10배 넘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왜 증권사인가
변호사들이 증권가로 몰리는 이유는 ‘금융전문가로의 성장’기회이기 때문. 변호사들은 금융상품 출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인수합병(M&A)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의 계약서를 검토하며 법률자문을 담당한다. 그러다 보니 자본시장의 큰 흐름을 읽는 동시에 실무까지 속속 체득할 수 있다. 나중에 로펌에 가거나 개업을 하더라도, ‘증권전문변호사’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중요한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대우증권 한서희 변호사는 “대학 때부터 금융에 관심이 많았지만 영업구조나 계약관계는 학교 수업만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며 “증권은 날로 변화하는 최첨단 분야인 만큼 현장에서 일하며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어 입사했다”고 말했다. 2월 한국투신운용에 입사한 이화석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시절 금융투자협회에서‘전문기관 연수’를 받고 증권투자상담사 자격증까지 따며 자산운용사 입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같은 금융 업종이지만 은행ㆍ보험보다 역동적인 것도 증권사의 장점. 한국투자증권 설광호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센터장은 “은행과 보험사는 이미 규정이나 업무 영역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반면 빠르게 성장하는 증권에는 새로운 분야가 계속 생겨나고 있어 끊임없이 도전하고 공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변호사의 취업난도 한 요인이다. 매년 1,000명의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면서 ‘레드오션’인 전통적 형사ㆍ민사분야 대신 금융과 같은 ‘블루 오션’을 찾는 변호사가 늘고 있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기업으로 가는 변호사가 많아졌고 그 중에서도 제조업이나 건설업보다는 금융업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증권현업 변호사도 등장
증권 업무를 더 깊숙이 배우기 위해 법무팀 아닌 투자은행(IB), 자기자본투자(PI), 채권 영업팀 등 현업부서에서 뛰는 변호사들도 나타나고 있다.
연수원 수료 후 로펌에서 2년간 일하다 증권사 M&A팀으로 온 주성훈 변호사는 영업과 마케팅 등 M&A 관련 실무를 직접 담당한 경우. 현재 NH투자증권 IB지원팀 소속의 주 변호사는 “자본시장법 시행을 앞두고 IB분야 전문가가 되려고 증권사행을 결심했는데 계약서 검토와 준법감시가 주업무인 법무팀보다는 IB 실무를 배워 전문성을 높이려고 현업부서로 왔다”고 말했다. 주 변호사 외에도 삼성증권 IB컨설팅팀, 신한금융투자 ECM(주식자본시장)부, 한국투신운용 SOC(사회간접자본)운용팀 등에도 5~6명의 변호사들이 일하고 있다.
낮은 처우도 감수
사내 변호사에 대한 처우는 증권사마다 조금씩 다르다. 사법연수원 수료 직후 입사하면 대리급 최고호봉 또는 과장 직급을 받는다. 10년전 만해도 변호사는 최소 부장급 대우를 받았지만, 이젠 ‘거품’이 확 빠진 상태다. 연봉도 중형 로펌 수준. 한 변호사는 “변호사 수가 많아지면서 처우가 과거에 보다 낮아진 건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실적에 따라 성과급이 많아지면 대형 로펌 수준까지 받기도 하며 제조업 사내 변호사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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