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이상한 아저씨가 있어요."
7일 오전 9시50분이 조금 넘은 시간. 서울 영등포구 7호선 OO역 인근 치안센터로 한 여자 아이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방과후학교 수업을 받으러 갔는데 낯선 아저씨가 막 붙잡으려 했어요." 자초지종을 들은 경찰들은 센터로부터 110여m 떨어진 초등학교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마침 짧은 머리의 어른이 A(8)양의 어깨에 손을 얹고 교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경찰이 불러 세우자 달아나기 시작했다. 수백여m를 쫓아 붙잡은 어른의 입에서는 진한 술 냄새가 풍겼고 손에는 문구용 칼이 들려 있었다. 납치범 김모(45)씨는 횡설수설했지만 신원조회결과 성폭행 전력까지 있어 경찰과 A양의 엄마 모두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러나 현실은 불행히도 이처럼 해피엔딩이 되질 못했다.
최초 납치될뻔했던 아이는 '이상한 아저씨'라고만 여겼는지 학교나 인근 파출소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10분 뒤 A양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비극이 일어났다. 더욱이 이에 앞서 이 학교 일직교사는 "운동장에 수상한 사람이 돌아다닌다"는 용역직원의 말을 듣고 김씨를 만났지만 "5학년 아들을 찾으러 왔다"는 말만 믿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날 방과후학교에는 5학년 수업이 없었다.
A양 납치ㆍ성폭행이 일어나기 전 사건의 징후가 보였지만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무심했다. 더구나 범인이 학교에서 1km 떨어진 집으로 A양을 끌고 갈 때 주변의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 사건은 나 외에는 돌아보지 않는 무관심 사회가 낳은 비극이다. 신고의식도 결국 공동체의 안전을 생각하는 마음이고, 교육의 결과다.
출입제한이든 순찰강화든 학교방비를 아무리 튼튼히 한다 해도 무관심이라는 큰 구멍이 뚫려 있는데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이성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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