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사실의 힘과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모든 의사결정과 표현의 밑바탕은 어떤 일의 발생과 경과를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부분만 안다거나 자의적ㆍ의도적으로 특정 부분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태도로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사실은 그리 쉽게 발견되거나 정확하게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해진 정파적 언론보도
더욱이 사실로 인정 받아 마땅한 것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사실의 파편을 모아 자신이 생각하거나 원하는 대로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무리 과학적 논거와 자료를 제시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천안함 사건의 조사결과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니, 사실을 그대로 밝히고 알리는 일이 더욱 더 중요해진다. 근본적으로 이 일을 맡아서 해야 할 것은 언론이다. 언론의 본래 기능이 그런 것이 아닌가. '생생한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서 시민의 눈이 되라 빛이 되라'(한국일보 사가의 한 대목)는 것이 언론에 대한 주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 언론은 그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파성과 진영논리에 매몰돼 어떤 사실은 아예 외면하고 어떤 사실은 변형ㆍ왜곡한다. 이런 문제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지금 더 심각한 것은 사실을 발견해 내는 언론의 능력, 이른바 취재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점이다. 의도적인 게 아니라 제대로 취재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사실을 왜곡하거나 오보를 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SBS에 단독 중계권이 있는 이번 월드컵 경기를 며칠 전 북한이 해적 방송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SBS와의 중계권 협상에 실패하자 무단으로 방송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틀 후, 아시아방송연맹(ABU)과 국제축구연맹(FIFA)이 북한등 7개 빈곤국에 대한 월드컵 중계에 합의했고, 북한은 이 계약에 따라 적법하게 자료화면을 넘겨받아 중계한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 언론 대부분이 오보를 한 것은 북한이 2002년에도 해적방송을 한 사실이 있다는 선입견과, 최근 고조된 적대적 감정의 작용이라 할 것이다. 북한이 이미 2006년 월드컵 때도 ABU로부터 중계권을 무상으로 제공 받았던 선례는 무시됐다.
이에 대한 북한의 침묵은 의아스러울 정도다. 천안함 조사결과가 날조라고 주장하는 북으로서는 우리 사회에 대한 비난의 자료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을 텐데 지금까지 별 반응이 없다. 인터넷공간에는 "그래,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나갔는데 얼마나 보고 싶겠어? 해적방송 좀 하면 어때?"하고 북한을 두둔하는 반응도 떠돌고 있다. 오보로 인해 발생한 불필요한 논란이다.
이창동 감독의 가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 심사에서 0점을 받아 빚어진 논란도 단순한 게 아니었다(한국일보 6월 17일자 '지평선'참조). 영진위는 지원자격등 심사규정에 맞지 않는데도 이 작품을 대상에 포함시키는 선심을 썼고, 결국 탈락하자 투자조합들에게 지원해 주도록 힘을 썼다. 자격 미달임을 알고도 심사 신청한 측은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자 영진위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개요에 대해서도 양측의 주장은 여전히 달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측의 억울함만을 부각시켜 영진위의 무능함과 안목 없음을 비난했다. 전 정권에서 문화부장관을 한 사람이니 으레 이 정권에서 피해/박해를 당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이 사건 보도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취재에 쏟는 노력ㆍ능력도 부족
일반인들은 이런 복잡한 경과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언론이 편견 없이 전모를 충실하게, 지속적으로 알려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능력이 부족한 게 문제다. 언론인 출신의 한 고위 관리는 "요즘 기자들이 취재를 너무 못한다"고 말했다. 그저 남의 말을 전하는 수준일 뿐 사실을 확인하고 쌓아가는 노력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취지였다. 사실을 밝혀내는 언론의 힘이 약해지면 공론 형성기능이 약해지고 사회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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