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행지는 숨기고 혼자서 즐기는 것이 내 여행법이다. 맛있는 밥집도 마찬가지다. 숨겨놓고 혼자 먹어야 그 맛이 오래가는 법이다. 좋다고 소문이 나면 쉽게 제 모습, 제 맛을 잃어버린다. '내 마음의 장소' '내 마음의 밥집'은 찾기보다 지켜내기가 힘든 법이다.
지난 주말과 휴일을 '채송화'란 이름으로 모여 시를 쓰고 동인지를 내는 시인들과 경주에서 보냈다. 1년에 몇 번씩 전국을 돌며 모임을 가지는 가족 같은 동인모임이다. 경주는 그 전 주에 방송된 '1박2일'로 가히 전쟁터였다. 곳곳에 주차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방송을 흉내 내 유명 문화재를 둘러보고 기념스탬프를 찍는 관광객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경주 가까이 살다보니 경주를 자주 찾는 편인데 그런 인파는 처음이었다. 나는 그 북새통을 피해 경주에 숨겨둔 내 마음의 장소와 밥집으로 시인들을 안내했다. 내가 즐겨 찾는 오래된 왕릉과 경주식 밥집이었다.
다들 경주에 여러 번 왔다갔지만 숨어있는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전라도 밥상에 뒤지지 않는 신라의 맛에 두 곳 다 별 5개의 평점을 주었다. 내심 흐뭇해하며 돌아오다가, 아차! 내가 내 여행법을 어겼다는 것을 알았다. 다들 예리한 눈을 가진 시인이니 오죽하랴. 엎질러진 물이었다. 모임 카페에 이내 시와 사진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이미 그곳은 '점령지'가 되어버렸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