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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6월, 거리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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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6월, 거리의 문화

입력
2010.06.1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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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시 거리의 문화를 목도한다. 어젯밤 남아공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일전을 벌인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며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 200만여명이었다고 한다. 한국 땅에서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이후 4년마다, 6월이면 어김없이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스포츠는 계기일 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거리에 나오는 것, 나와서 같은 붉은 빛깔의 옷을 입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목터지게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다.

그들은 언제 거리를 그들의 것으로 가졌던가. 가까이는 2008년의 촛불시위, 조금 멀게는 23년 전 최루탄을 쏘지 말라고 절규하며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내달렸던 6월항쟁, 더 멀리는 올해로부터 꼭 50년 전 4ㆍ19혁명을 촉발시켰던 학생들의 스크럼이 있었다. 본래 그들은 거리로 나오고 싶어했다. 그 열망이 억눌렸을 뿐, 억눌렸다가 터져서 어쩔 수 없이 뛰쳐 나왔던 것일 뿐, 언제나 자신의 밀실을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월드컵은 그 불쏘시개인 것이다.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자발적인 거리의 문화가 억눌리고, 밀실에 갇혀 있어야 할 때 그들은 쉽게 체념한다. 최근 젊은이들의 삶을 다룬, 흔히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이들의 세태를 그린 문학작품들을 보면 그들이 겪어내고 있는 밀실의 끔찍함이 느껴진다. 얼마 전 스님이 되기 위해 출가한 중견 시인 차창룡은 '고시원'이라는 밀실에 빗대 우리 사회를 비판한 시를 쓴 적이 있다. "괜찮습니다 참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수행법이니… 서로 간섭하지 않는 습관이 미덕이 되어 나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일에는 끼어들지 않습니다… 괜찮아요 불이 나도 어차피 열반에 들면 누구에게도 방해되지 않을 테니까요."

2010년 오늘의작가상을 받은 28세의 여성 소설가 김혜나는 수상작 에서 호스트가 나오는 노래바나 노래방이라는 밀실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한국이라는 사회체제의 루저로 살아가는 청춘들의 일상을 충격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 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죽어서도 결코 변하지 않을 이 바닥 인생을 생각하면, 도무지 죽을 수조차 없게 돼 버려." 모든 것이 '경제적'이라는 척도로 재단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두고 작가는 자신의 소설 주인공들을 "희망을 갖는 것이 섹스하는 것보다 더 비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희망에 대한 희망마저 잃어버리고 서글픈 섹스에 몰입하는 인물로 그린다.

지난 지방선거에서의 엉터리 여론조사도 밀실의 젊은이들의, 우리 사회에 대한 불신의 표출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른바 '숨은 20%'는 자신들의 밀실에 전화를 걸어오는 여론조사원들한테 의중을 드러내지 않거나 심지어 거꾸로 된 답변을 한 것이다. 그들은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거리로 나와 투표소로 가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나의 시대에는 길들이 모두 늪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는 시를 쓴 것은 1930년대의 브레히트였다. 하지만 2010년 한국에서 밀실로부터 나오는 길들이 모두 늪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 늪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밀실을 박차고 거리로 나와야 한다. 6월 우리의 거리의 문화를 보면 희망을 갖고 싶어진다. 스포츠 애국주의니 월드컵 상업주의니 하는 소리 누가 거들지 않아도, 거리로 나오는 이들은 그런데 휘둘리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종오 문화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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