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화면 가득 눈이 펄펄 내린다. 아니, 눈발이 화면을 뚫고 거실 공간까지 내려 앉는다. 눈발 사이로 괴물들이 달려든다. 손에 든 동작인식 조종기(모션 컨트롤러)를 괴물을 향해 마술봉처럼 휘두르자 화면 가득 빛살이 쏟아지며 괴물들이 쓰러진다. 다시 손에 든 조종기를 물병처럼 들고 마시는 시늉을 하자 게임 속 마법사가 물약을 마시며 힘을 충전한다.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올해부터 가정용 게임기에서 새롭게 즐길 수 있는 게임 내용이다. 이제 가정용 게임기는 새로운 세상을 맞게 됐다. 기존에 손가락으로 조종기 버튼만 부지런히 누르던 게임의 시대에서 입체(3D) 영상을 향해 온 몸을 움직이는 오감 게임시대가 열렸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 닌텐도 등 가정용 게임기 업체들이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게임전시회 E3에서 차세대 가정용 게임기를 일제히 공개했다. MS의 키넥트(Kinect), SCE의 무브, 닌텐도의 3DS 등 차세대 게임기들의 특징은 사람의 오감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MS가 11월에 내놓을 키넥트는 게임기가 사람의 동작을 인식한다. 키넥트는 사람 또는 가족을 뜻하는 kin과 연결한다는 뜻의 connect를 합친 신조어. MS가 기존에 내놓은 가정용 게임기 엑스박스360에 별도 발매하는 동작 인식 장치인 키넥트를 연결하고 게임을 진행하면 사람의 손짓, 발짓을 게임기가 인식해 온 몸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 속에 나타난 공을 향해 힘껏 발길질을 하면 공이 날아가고 손을 내밀면 게임 속 등장인물과 악수를 할 수 있다. 쿠도 쓰노다 MS 게임스튜디오 이사는 "이제 말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온 몸을 움직여 게임을 즐기는 시대를 선언했다.
이를 위해 MS는 뛰고 달리고 춤추고, 운전하거나 하늘을 나는 가상 체험을 제공하는 8종의 게임을 함께 공개했다. MS는 키넥트를 연내 국내 출시할 계획이나 구체적 시기와 가격은 아직 미정이다.
SCE가 이날 공개한 무브도 사람의 동작을 인식한다. SCE가 내놓은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3에 별도 판매 예정인 무브의 동작 인식 장치를 연결하면 손짓, 발짓, 표정 등 사람의 동작이 그대로 게임에 적용된다. 이를 위해 SCE는 내년 3월까지 '소서러'등 동작 인식이 가능한 20개 이상의 게임을 선보이기로 했다.
특히 SCE는 3D 게임도 대거 선보인다. 이날 공개한 '킬존3'는 입체 안경을 착용하면 펄펄 날리는 눈발이 이용자 주변에 흩날리는 풍경을 연출해 시연회 관람자들의 갈채를 받았다. 유명 자동차 게임인 그란투리스모5도 11월에 3D로 등장할 전망이다.
SCE는 무브를 9월15일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유럽 지역에 우선 선보이고 9월21일에 미국, 10월21일에 일본 등으로 순차 발매할 예정이다. 가격은 무브 컨트롤러의 경우 49.99달러이며, 비디오 카메라를 포함한 패키지는 89.99달러다.
위(wii)를 통해 동작 인식 게임기를 가장 먼저 선보인 닌텐도는 이번에 3D로 돌아섰다. 닌텐도는 이날 휴대용 게임기 DS에서 입체 화면을 지원하는 3DS를 공개했다. 위, 아래 2개의 화면으로 구성된 3DS는 위쪽 화면에서 안경없이 볼 수 있는 입체 화면을 지원한다.
관람자들에 따르면 3D TV만큼 입체감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입체 효과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정도다. 이를 위해 닌텐도는 닌텐독스3DS, 동물의 숲 3DS, 킹덤 하츠, 메탈기어 솔리드 등 15종의 3D 게임을 내놓을 계획이다. 3DS의 국내 발매 시기 및 가격은 아직 미정이다.
이처럼 게임기 업체들이 오감 게임에 도전하는 것은 정체된 게임 시장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다. 가정용 게임기 업체들은 스마트폰이 부상하면서 판매율이 떨어지는 등 타격을 입었다.
따라서 과거 영화제작사들이 TV 등장에 따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대형 화면의 영화 제작으로 돌파구를 찾은 것처럼 게임기 업체들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체감형 게임과 3D로 해법을 찾고 있다. 체감형과 3D는 컴퓨터(PC) 및 스마트폰에서 제공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가정용 게임기들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SCE 관계자는 "이제 가정용 게임기 업체는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며 "동작 인식과 3D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만큼 올 하반기부터 새로운 오감 체험형 게임에 대한 마케팅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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