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갈 물린 채 머리 밟기, 수갑 채워 날개 꺾기 등 사라졌던 단어들이 부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담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어제 발표한 경찰의 피의자 수사실태가 그렇다.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은 32명을 조사한 결과 22명이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한다. 양천경찰서는 "절대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으나 우리는 인권위의 조사와 발표를 신뢰하며, 경찰이 피의자 인권보호에 새로운 인식을 갖는 계기로 삼을 것을 촉구한다.
인권위가 발표한 내용이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해당 경찰관에 대한 직권조사를 거친 뒤 나온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고문을 가한 장소가 호송 중인 차량 안과 조사실 CCTV의 사각지대에서 이뤄졌다는 대목에서 그러한 행위가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또 고문 이유가 공범관계 수사와 여죄 추궁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구시대 시국사건에서나 있었던 행태가 여전히 답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경찰서는 피의자들이 검거 당시 마약에 취해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나 고문 당한 것으로 인권위가 확인한 피해자 가운데는 절도혐의 피의자가 더 많은 것으로 판명됐다. 또 조사실 CCTV의 화면 절반이 천장을 향해 들려 있었던 데 대해 경찰이 관리업체가 하는 일이라 알지 못했다는 변명이 군색하기만 하다. 해당 경찰관 5명에 대해 즉각 대기발령을 내린 이유도 정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수사기관의 고문과 가혹행위는 군사정권이 끝나면서 많이 줄어들었고, 이후 최근에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실적과 성과만 중시하고 피의자의 자백과 진술에 의존하는 수사관행이 여전하다면 고문과 가혹행위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인권위가 이번 사안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하고 경찰청에 직무감찰을 권고했으니 보다 철저한 진상이 밝혀질 터이다. 관련자에 대한 엄정한 문책과 함께 전반적인 인권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특정 경찰서, 일부 수사관의 그릇된 일탈이라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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