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단편영화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이 그러려니 했다. 음반도 내고, 소설도 쓰고, 그림 전시회도 열 정도로 창작에 대한 욕심이 많으니까. 그러나 극장 개봉을 겨냥한 장편영화는 다르지 않은가. 오랜 시간 여러 사람과 공을 들여야 하고, 억대의 자본이 투여되는 일이기에 책임감과 자신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물며 영화 출연도 한번 하지 않은 배우라면 그 부담감은 누구보다 몇 곱절일 것이다. 게다가 그 결과물에 편견으로 이뤄진 의혹의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을 테니 이래저래 산 너머 산 일터.
하지만 구혜선은 스물여섯 젊은 배우에게 버겁기만 할 듯한 작업을 해냈다. 24일 개봉하는 그의 첫 장편 '요술'은 수작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얼굴만으로 호객 행위를 하는 철면피성 영화는 절대 아니다. 천재적이라 할 수 없지만 북돋아주고 싶은 재능이 담겨있다. 9억원을 들여 만든 '요술'은 국내 굴지의 영화사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하고 배급에 나선다.
16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구혜선은 "단편영화 촬영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단편영화 연출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지인의 권유가 원동력이었다.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전 대표가 단편 시나리오 한번 써오라 해서 썼고, 콘티를 만들어오라 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한번 찍어보라고 해서 찍었다"며 그는 영화연출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대학에서 연출을 공부하지도 않았지만(그는 서울예술대 방송연예학과를 중퇴했다) "TV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쌓은 현장경험도 좋은 영향을 줬다"고도 말했다.
구혜선이 시나리오까지 쓴 '요술'은 첼로와 피아노를 전공하는 세 명의 남녀 고등학생들을 통해 청춘의 우정과 사랑과 방황을 그린다. 구혜선은 "어떤 메시지를 던지기보다 음악영화에 과시욕과 열등감, 소극성 등 청춘의 어리석음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클래식을 이해하기 위해 촬영 전 두 달간 첼로를 배웠다.
팔방미인의 자질을 드러내고 있지만 '뭐 하나 똑바로 하려 하지 않는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기 마련. "어려서부터 하도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아 진로 고민을 많이 했다"는 구혜선은 "음악과 문학과 그림이 다 별개의 분야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글을 쓰면 거기에 맞는 그림과 음악이 떠오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는 "영화 공부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미술과 음악 등도 배우려 한다. 단지 내가 여자 연기자이고 어리니까 도드라질 뿐"이라고도 말했다. "다른 것도 배워야 전문성이 깊어지잖아요. 바느질을 잘하려면 천과 실에 대해 잘 알아야 되는 것처럼요."
예상대로 그는 "책 욕심이 병적일 정도"라고 했다. "책을 마구 사 쌓아만 놓아도 부자가 된 듯하다. 문 있는 쪽 벽을 빼면 제 방이 다 책으로 쌓여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전혜린의 에세이집 . "제가 항상 답답해 하며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문학적으로 끌어낸 글들이라 밑줄 그으며 읽었다"고 그는 밝혔다. "제 영화에 영향을 받을까 우려해 얼마 전까진 영화를 많이 보진 않았어요. 그것도 일종의 자격지심인거죠. 요즘엔 영화도 열심히 봐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오래된 영화도 많이 보려고 합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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