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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축구 영화를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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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축구 영화를 다시 보다

입력
2010.06.16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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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해서 아름답다. 디자인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가장 오래된 스포츠 종목인 축구가 세계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규칙의 단순성 때문일 것이다. 오프 사이드를 몰라도, 프리 킥과 코너 킥을 구별 못해도 축구는 재미있다.

흔히 축구를 전쟁에 비유한다. 축구 중계를 보면, 카메라는 축구의 경쟁적이고 투쟁적인 에너지를 잡아내고 때론 공격적인 요소를 부각하면서 집단주의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영화 속 축구도 마찬가지이다. 실베스터 스탤론과 축구 황제 펠레가 출연한 은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연습도 제대로 못한 포로들과 독일축구팀의 경기를 그리고 있다.

포로 대표팀은 경기로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중간 휴식시간에 하수구로 탈출하는 계획을 세운다. 경기는 져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축구란 전쟁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국가 간의 대리전이다. 포로팀이 진다면 조국과 연합국이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탈출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는다.

축구가 집단주의만 조장하는가? 그렇지 않다. 세상 어디에서도 축구의 언어는 통한다. 영화 에서 보면 히말라야 수도승조차 입으로는 불경을 읽으면서 눈은 스포츠잡지의 화보를 좇는다. 벽에는 '파라과이 만세!', '독일 이겨라!' 등의 낙서가 가득하고, "나무아미타불" 대신 "나이스 고~올!!!"을 외친다. 월드컵으로 상징되는 서구 문명을 히말라야의 자연과 대비시켜, 축구에 매료되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지적한다. 축구의 매력은 스님들간 세대 갈등도 문명과 자연의 대립도 녹여 버릴 만큼 강력하다. 영화 끝 무렵에서 펼쳐지는, '적들에 대한 증오심을 극복하라'는 노스님의 법문은 불교의 자비 정신을 축구라는 스포츠에 훌륭히 접목시키고 있다.

독일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당시 최강이던 헝가리를 이긴 후 2차 대전의 상처로 신음하던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여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1990년 독일 통일 후에는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분단의 상처로 깊게 패인 서독과 동독을 하나되게 했다. 독일의 월드컵 우승은 독일의 국운과 함께 뻗어 나갔다. 독일은 한 소년의 눈을 통해 1954년 월드컵 첫 우승을 되새김하는 영화 을 만들었고, 슈뢰더 총리는 이 영화를 3번이나 보며 그 때마다 울었다고 한다.

사실 '찬다'는 말은 '관계를 끊는다'는 의미로 애인들이 절교할 때 쓰는 표현이지만 축구만은 다르다. 이미 우리는 2002년 태극전사들의 선전이 이 땅에 뿌리깊은 레드 콤플렉스를 어떻게 일소했는지 보았다. 바퀴 문화로 대표되는 인라인이나 자전거를 넘어 함께 길거리 문화를 즐기게 되었다. 평가전에서 져도, 본 경기에서 이기면 된다는 여유, 한 게임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감독을 지긋이 믿어야 한다는 신뢰의 리더십도 배웠다.

다시 월드컵의 계절. 오늘은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가 빅 매치를 벌인다. 공은 둥글고 90분은 긴 시간이니 승부는 알 수 없지만, 이기든 지든 온 국민이 우리 선수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낼 것이다. 축구의 정신이란 전 세계 시민들이 화합의 원탁에 함께 앉는 것. 부부젤라 소리도 아프리카의 문화로 수용하고, 실수와 실패를 껴안으며, 가족과 이웃 모두가 앞마당에서 축구를 하듯 신나게 축제를 즐기자. 대한민국 파이팅!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오늘을 기억하게 하고 싶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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