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오르는 도중인데 펀드에서 돈이 빠지는 것은 우리(자산운용사) 책임입니다. 펀드시장의 양적 팽창에만 치중한 탓에 생긴 후유증이니까요."
조재민 KB자산운용 사장은 한국 펀드업계의 산증인이다. 외국계 은행에서 외환ㆍ채권 딜러로 일했던 그는 정보기술(IT) 벤처 붐으로 국내 증시가 활황이던 1999년 마이다스에셋 지분참여를 계기로 펀드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5월말 자리를 옮겨 앉은 KB운용까지,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로만 11년을 보냈다. 그런 그가 요즘 업계를 향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16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조 사장은 "펀드런(대량환매)은 업계가 지고가야 할 업보나 다름없다"고 했다. 하루 1조원 이상이 쏟아지던 2007년 '묻지마 투자'의 위험성을 알리고 냉정을 당부해야 했는데,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투자자를 말리지 못한 후과가 대량 환매와 펀드업계의 신뢰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 사장이 '누워 침뱉기'식의 비판을 쏟아내는 이유는 뭘까. 그의 회사는 '펀드 환매'의 무풍지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올들어 4조6,000여억원이 빠져나갔지만, 업계 4위(운용자산 2조9,000억원)인 KB운용으로는 오히려 연초 이후 3,100억원이 유입됐다. 조 사장은 "주력 펀드들이 꾸준히 괜찮은 수익률을 내고, 소비자들이 펀드 상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하게 가져가면서 믿음이 쌓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조 사장은 펀드 상품을 팔 때도 정석 플레이를 하라고 주문한다. "시장 유행을 좇아 신상품 경쟁에 치우칠 게 아니라, 기본 상품을 키우면서 기존 고객을 꾸준히 오랫동안 돌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취임 이후 지난 1년간 그가 힘을 쏟은 부분도 '펀드 라인업'이었다. 흥행에 성공한 펀드에서 이름만 빌려온 후속편 펀드를 난립시키는 대신 성장-가치-혼합형 등 기본유형별로 대표펀드 1개씩에 주력하는 운용방식을 선택했다. 그는'느긋한 성격'덕분인지 단기 성과보다는 꾸준히 수익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1위를 하고 내년에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등 부침을 거듭하기보다는 꾸준히 상위권에 있으려고 노력하면, 장기적으로는 최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KB운용은 3년 수익률에서는 전체 4위, 운용자산 5,000억원 이상 중에서는 1위이다.
조 사장은 "주식시장의 회복세가 내년에는 절정에 달해 코스피 2,000돌파도 가능할 것 같다"며 "한 두달이 아니라 1~2년을 기다릴 수 있다면, 지금이 펀드 투자의 적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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