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이 드디어 시작됐다. 첫 도전자는 젊은 정육점 사장 김춘호(27)씨. 비록 거울 앞에서지만 연습깨나 했고, 방송 일 하는 여자친구의 '지도편달'도 받은 터이지만, 막상 무대에 나서니 입이 안 떨어지나 보다. 긴장한 얼굴로 쭈볏거리며 선 그에게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대기자들의 격려에 힘을 받은 듯 그예 그의 입이 터진다. "돈!돈!돈! 돈이 뭐길래 사나이 가슴을 이리도 울린단 말이냐?" 하지만 갑자기 또 말문이 막힌 듯 그는 머뭇거리고, 다시 힘찬 박수와 함께 유쾌한 웃음소리…. 심사위원석도 경쟁자들인 대기자석도 이 초보 연기자의 진땀의 첫 무대를 격려했다.
13일 오후 2시 서울 망우동 우림시장 내 지역예술단체 '우리문화달구지(이하 달구지)' 사무실. 우림시장상인회와 달구지가 설립을 추진중인 상인 극단 '춤추는 황금소'의 창단 단원 모집 공개오디션이 열렸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벌여 온 문화프로젝트 '문전성시'에 상인회와 달구지가 상인극단 창립 프로젝트를 응모해 선정됐다고 한다.
극단은 좋은 배우들을 뽑아 올해 내내 연습한 뒤 연말께,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위기에 직면한 재래시장의 어제와 오늘, 우림시장 40년의 희로애락을 뮤지컬로 작품화할 계획이다. 초등학생부터 60대 할머니까지, 시장 상인 15명과 동네 주민 35명이 모두 50명이 오디션에 참가했고, 그 숫자만큼의 응원단이 동참해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들에게는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에서 돈 때문에 이별하는 장면의 대사를 연기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치킨 가게를 운영하는 이경숙(50)씨는 장사하다 말고 헐레벌떡 앞치마를 입은 채 와서는젖 먹던 힘까지 다해 오디션에 임했고, 장이 선 70년대부터 장사를 해왔다는 할머니도 도전에 나서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오디션 과제와 무관한 개인기를 뽐내며 심사위원의 눈을 사로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어린이집 교사 김옥수(30)씨는 우림시장에서 파는 싱싱한 채소와 생선을 먹으면 몸매가 S라인이 된다는 내용의 홍보 CF를 만들어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민지열(58)씨는 아코디언 연주 실력을, 60대 초반 조희자씨는 판소리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기성 연기자 뺨치는 실력자도 없지 않았다. 한영자(44)씨는 바닥에 무릎 꿇고, 의자에 앉은 다른 참가자의 다리를 덥석 잡더니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영철씨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어디로 떠난단 말이에요"라며 감정 연기에 몰입, '오~'하는 감탄사와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엄금정씨도 따라 해보려는 듯 다른 참가자의 손을 잡은 채 연기를 시작하긴 했으나 쑥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한 30대 여성 상인은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울먹이며 뛰쳐나가기도 했다. 정인덕씨는 가수 조영남의 '화개장터'를 개사한 '우림장터'를 참가자들과 함께 부르며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3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상인과 주민들의 넘치는 끼에 놀라며 함께 즐거워했다. 심사위원장인 배우 박웅(70)씨는 "여러분들의 넘치는 끼와 재주에 감동받아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리 인생 자체가 연극인 만큼 이미 수 십 년간 연기를 해온 여러분의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25명을 뽑는 오디션 결과는 21일 개별 통보된다. 달구지 대표 경상현(46) 씨는 "합격한 상인과 주민들은 계속 극단 활동을 해야 되기 때문에 책임감과 적극성, 연기 생활 지속여부 등을 전화 면접으로 함께 평가해 합격자를 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합격자들은 25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다음 달 중순부터 매주 2-3회 화술, 캐릭터 분석, 연기 동선, 안무 등 본격적인 연기수업을 받는다. 공연은 12월 중순 공사중인 상인회 소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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