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가 영화진흥위원회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에서 0점을 받은 것을 두고 지루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논란은 이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으면서 불거졌다. 유명 국제영화제가 인정한 작품에 빵점을 주고, 두 번이나 탈락을 시키다니, 정치적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영진위가 여러 자료를 인용해"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수상'과 '빵점'이라는 두 단어, 때마침 불거진 영진위원장의 독립영화지원 심사압력 논란까지 겹쳐 설득력을 잃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의 0점 논란은 초점이 빗나가 있다.
■ 영진위는 두 가지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는 지난해 1차 지원에서 심사위원 한 명이 0점을 주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는'결과'이다. 심사압력 논란에 대한 변명과 같다. 또 하나는 올해 2차 심사에서는 가 선정기준인'순제작비 20억원 이내의 제작 예정인 작품'에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심사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아깝게 탈락해서 다양성투자조합과 중형영상전문투자조합이 지원하도록 힘까지 썼다는 것이다. 이렇게 규정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제작을 지원했는데 차별과 볼이익이라니. 그것이야말로 의도적 정치 공세이고 왜곡이라는 것이다.
■ 아이러니하게도 논란의 근본원인은 바로 영진위의'규정을 넘어서'에 있었다. 1차 심사를 앞두고 영진위는'5편 이상 연출한 감독'인 지원자격을 '각본까지 포함'으로 고쳤다. 당시 상황으로는 누가 봐도 연출작이 4편인 이창동 감독을 위해서다. 전 정권의 장관 출신이라는 부담 때문에, 쓸데없는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해 오히려 원칙을 무너뜨린 것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시나리오가 아닌 줄거리(트리트먼트) 상태의 를 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잘못이다. 규정 상으로는'무자격'이니 감독에 대한 호ㆍ불호나 작품성과 관계없이 반려해야 했다.
■ 이런 점에서 책임은 명백하게 영진위에 있다. 처음부터 원칙을 엄격히 지키고 눈치보기를 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0점으로 망신 당하고,'차별'이 아니라 오히려 '배려'하고 욕먹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 영진위는 규정을 어기고 투자조합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비판까지 받게 됐다. 그럼 는 아무 잘못이 없는가. 자격 미달인 것을 알고도 신청을 강행했으니 불이익 감수는 마땅하다. 그런데 일부 영화인, 정치인, 언론에 슬며시 기대 갑자기 억울한 피해자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영화제 수상이 원칙과 규정까지 무시해도 되는 '정의'는 아니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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