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현리 마당 한 편에 몇 그루 심어 둔 산딸기가 유월 불볕에 또록또록 익어가고 있다. 심심할 때 잘 익은 몇 알씩 따 먹는 재미가 맛보다 더 달콤하다. 손님이 오면 산딸기 몇 알을 따서 함께 먹는 맛이, 손님이 가면 몇 알 따서 입에 넣어주는 맛이 먹는 입이나 주는 손이나 행복하게 한다.
나는 산문집을 잘 내지 않는 시인이다. 신문과 잡지의 연재가 많아 산문 원고가 정리가 힘들 정도로 수북하게 쌓여있다. 산문집 출간을 권하는 곳이 있어도 내가 만족하는 '한 권의 시집'이 나오기 전까지는 산문집 출간은 자제하고 있다. 은현리에 들어갈 무렵 디지털 카메라 DSC-F5005V를 샀는데 사진 찍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그 기종이 접사 기능이 뛰어나서 어느날 산딸기 사진을 찍다 그 열정적인 붉은색의 유혹에 흠뻑 빠져버렸다. 그래서 이란, 사진집에 가까운 책을 낸 지 10년쯤 됐다. 사진과 사진에 대한 짧은 글인데, 글을 마치 시처럼 편집해 놓으니 아직까지 인터넷에는 그 산문이 내 시가 되어 떠돌고 있다.
그때 산딸기를 보고 '나는 저 유혹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 불빛에 눈멀어 그대에게 갑니다'라고 몇 줄 썼다. 산딸기는 여전히 나에게 유혹적이다. 머지않아 장마가 온다는데 저 '유혹'이 빗물에 다 씻겨 녹아버리기 전에 한 번 다녀가시길. 당신.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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