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과학과 정밀한 데이터가 점점 더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스포츠 경기에서도 여전히 징크스의 위력은 상당하다. 명쾌한 인과관계로 설명되진 않지만 오랜 세월 동안 되풀이된 불운한 결과는 미신처럼 선수와 팬들의 의식을 지배한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도 어김없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징크스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전 대회 우승국의 첫 경기 부진 징크스다.
지난 대회 우승팀인 이탈리아는 15일(한국시간) 케이프타운 그린포인트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조별리그 F조 1차전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1-1로 간신히 비겼다. 남미의 복병으로 평가 받는 파라과이지만 FIFA랭킹 31위를 상대로 거둔 무승부는 디펜딩챔피언으로선 실망스러운 결과다.
경기 내용도 변변치 못했다. 전반 38분 파라과이의 안톨린 알카라스(브뤼허)에게 선제골을 내줘 끌려 다니다가 후반 18분 시모네 페페(우디네세)가 띄운 코너킥을 다니엘레 데 로시(AS로마)가 오른발로 차 넣어 겨우 동점을 만들었다. 경기 후 이탈리아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무척 실망스럽다"며 노골적으로 아쉬움을 드러낼 정도였다.
그러나 우승팀들의 다음대회 첫 경기 졸전의 역사는 뿌리깊다. 월드컵 역사상 최강팀으로 평가 받던 1970년 대회 우승팀 브라질은 74년 서독월드컵 개막전에서 유고슬라비아와 0-0으로 비겼다. 74년 우승팀 서독은 78년 아르헨티나 대회에서 폴란드와 비겼고, 78년 우승팀 아르헨티나는 82년 스페인대회때 벨기에에게 0-1로 무릎을 꿇었다. 82년 정상에 오른 이탈리아는 86년 멕시코대회에서 불가리아와 1-1로 비겼고, 86년 우승팀 아르헨티나는 90년 이탈리아대회 개막전에서 카메룬에 종료직전 결승골을 허용해 0-1로 패하는 등 하나같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90년 우승팀 서독과 94년 우승팀 브라질이 다음 대회 개막전에서 각각 볼리비아와 스코틀랜드를 꺾어 징크스가 사라지는 듯 했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세네갈에 0-1로 패하면서 다시 강팀들의 악몽이 시작됐고, 이번 대회에선 이탈리아가 희생양이 됐다.
이전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던 팀 중 한 팀은 다음 대회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는 '4강 징크스'도 1930년 우루과이 대회 이후 11차례나 맞아떨어졌다. 이번엔 지난 대회 4강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가운데 낙오자는 없었지만 프랑스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졸전 끝에 우루과이와 0-0으로 비겼다.
강팀들의 초반 고전 징크스는 조별리그에 포커스를 맞추는 대신 16강 이후의 승부에 주력하는 전략 때문으로 풀이된다. 프랑스는 2006년 독일대회 조별리그에서 스위스와 한국에 잇따라 비겨 한때 탈락 위기까지 몰렸으나 결국 결승까지 오른 바 있다.
한준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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