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 처음 로댕을 만난 것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공연 차 파리에 갔다가 루브르 박물관을 들렀는데, 그곳에서 나는 로댕의 '입맞춤'을 마주했다.
무용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그림보다는 조각에 관심을 갖는 것이 내게는 당연한 일이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도 옷 안에 감춰진 몸을 한눈에 가늠할 정도니 내가 몸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러시아에서 공부할 당시 에르미타쥬 박물관을 갔을 때도 조각에만 눈이 갔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곳에서 본 프쉬케와 큐피트 상은 한참 물이 오르던 10대 후반의 내 감성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그 뒤 한동안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리스 조각상에 빠져 지냈다. 발레 동작 중에는 그리스 조각상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것도 있어서 '나도 조각상을 보면서 뭔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그 옛날에 그렇게 섬세하고 너무도 인간적인, 산 사람보다 더 생생하게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을까. 나는 감탄을 거듭했다.
그러나 로댕의 '입맞춤'은 단순한 감탄 수준이 아니었다. 충격을 받으면 소위 '머리를 한 대 맞았다'고 표현하지 않나. 당시 나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 한 대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면서 넋을 놓고 감상하는 나 자신을 보며, 전에는 조각을 관찰하는데 그쳤다는 걸 알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앞에 서 있었던가.
그것은 단순히 돌로 만든 조각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키스를 나누는 연인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었지만 당시 느낀 감정은 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내 머리, 마음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이후 나는 파리에 로댕미술관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번이나 찾아갔다. 크지는 않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정원이 로댕의 여러 작품과 어우러진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다시 로댕을 만났다. '신의 손'을 비롯해 그 전에 보지 못했던 로댕의 작품은 또 새로웠다. 파리에서는 혼자 산책을 한 느낌이라면 한국에서는 친구들과 여행하는 것처럼 친근했달까. 막연했던 감동은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인간의 몸은 물론이고, 감정과 마음까지 조각에 새겨 넣은 거장에게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감정까지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로댕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하얀 돌 위에 고스란히 옮겨놓은 창조자 같다. 한국에서 만나는 파리의 바람과 로댕의 숨결이 애틋하다. 반갑다.
김지영·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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