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 전문경영인 A씨는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습니다. 요즘 그는 아들과 딸의 맞선자리를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올해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자녀의 결혼을 서두르는 것이지요. 금융기관 이사 B씨의 사정도 엇비슷합니다. 내년에 퇴직하는 그는 둘째를 결혼시키기 위해 말 그대로 총력을 쏟고 있습니다.
자녀가 결혼적령기에 이르렀을 때 정년을 맞이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부모 대부분은 자신들이 현직에 있을 때 자녀를 결혼시키고 싶어합니다. 우리나라의 결혼 축의금은 일종의 품앗이일 것입니다. 부조금을 받아 결혼식을 치르는 것은 아니지만, 하객들이 낸 부조금이 혼사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남의 결혼식에 가서 축하하고 부조하면, 내 자식 결혼식 때 대개 돌려받게 됩니다.
문제는 부모가 현직인가 아닌가에 따라 결혼식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하객은 부모의 인맥과 관련이 있으므로 부모가 현직에 있으면 아무래도 찾아오는 이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랜 세월 곳곳에 뿌린 축의금 회수율도 높아지게 마련이고요. '정승집 개와 문상'이라는 옛말 그대로입니다. 정년이 다가오는 부모가 자녀의 혼인을 재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이처럼 자녀의 결혼과 부모의 정년이 맞물리는 것은 상당부분 만혼 풍조 탓입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20대에 결혼을 해온 어느 집안은 40대에 사위와 며느리를 맞이하고, 60대에 손자 사위와 며느리를 봤습니다. 저의 부모는 20년 전 맏아들의 결혼이 개혼이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50대 중반, 어머니는 50대 초반이었습니다. 참고로 1990년의 평균 결혼연령은 남성 27.8, 여성 24.8세였습니다.
하지만 1세대도 채 못 지나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자녀가 결혼하는 시점에서 부모의 나이를 조사했더니 아들의 아버지는 63세, 어머니는 59세로 밝혀졌습니다. 제 형이 결혼할 무렵 부모의 연령과 비교하면 다섯살 정도 많아진 셈입니다. 50대 중반에 아들을 결혼시킨 제 아버지는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정년이 따로 없었습니다. 또 50대 중반은 한창 일할 연령대이므로 아들의 결혼이 그리 부담스럽지 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예순이 넘어 자녀를 결혼시키려면 부모는 이래저래 불안해지게 마련입니다. 특히, 아버지의 정년이 코앞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자녀 결혼에 드는 비용이 만만찮을 뿐더러 머지않아 경제활동 자체를 접어야 하니까요. 아들은 딸보다 더 늦게 결혼하는 수가 많기 때문에 부모의 부담감은 배가 되기까지 합니다.
사위나 며느리를 늦게 들이는 추세는 앞으로도 한동안 트렌드로 유효할 듯합니다. 결혼 당사자는 그저 '결혼이 많이 늦어졌구나'라고 느끼는 수준이지만, 결혼비용을 부담하고 하객을 청해야 하는 부모는 애가 탑니다. 자신에게 이러한 상황이 닥치리라고 어느 부모가 상상했겠습니까. 변변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자녀의 결혼은 부모, 특히 아버지의 연줄과 경제력이 좌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녀는 아버지의 연령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효도는 먼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 남녀본색
결혼정보회사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는 자녀를 결혼시키는 부모의 나이를 파악하고자 2000년 1월1일부터 2009년 12월31일까지 10년 동안 선우를 통해 결혼한 7812명(3906쌍)을 대상으로 결혼시점의 부모 연령을 조사했다. 분석 결과 성혼커플의 부모 나이 평균은 남자의 경우 아버지 65.2, 어머니는 60.9세였다. 여자의 경우 아버지 62.1, 어머니는 57.6세였다. 결혼정보회사의 회원 가운데는 만혼하는 케이스가 적지 않으므로 실제로는 이보다 두 살 정도 낮춰 보면 정확하다. 결국, 아들을 결혼시킬 때 부모의 나이는 각각 약 63, 59세이고, 딸을 결혼시킬 때는 60, 56세인 셈이다. 또한 부모의 연령을 기준 삼았을 때, 아들을 결혼시킬 무렵의 아버지 나이가 딸을 결혼시킬 당시보다 3.1세 더 많았다. 어머니의 나이는 3.3세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