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 출전 중인 선수들의 싸움 상대는 맞대결 팀뿐만이 아니다. 최상의 경기력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껄끄러운 환경과도 싸워야 한다.
남아공월드컵에서 선수들을 괴롭히는 골칫거리는 3가지로 요약된다. 11번째 월드컵 공인구인 자블라니(Jabulani)는 선수들과 처음 대면했을 때부터 잡음이 일었고, 나팔 모양의 악기인 부부젤라(Vuvuzela)는 경기에만 집중해야 할 선수들의 정신을 흩뜨리고 있다. 여기에다 새롭게 선보이는 잔디도 무시할 수 없는 골칫거리다.
개막 전만 해도 테러 위협과 불안한 치안이 가장 큰 걱정이었지만, 막상 열전에 돌입하자 경기장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말썽이 그치지 않는 모양새다.
골 가뭄은 자블라니 탓?
개막전부터 14일(한국시간) 독일-호주전까지 8경기에서 13골이 나왔다. 한 경기 평균으로 따지면 1.63골이다. 4년 전 독일월드컵에서의 2.3골, 역대로 가장 적었던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의 2.21골(이상 전경기 기준)과 비교해도 극심한 골 가뭄이다.
선수들은 이 같은 현상의 주범으로 '마구(魔球)' 자블라니를 꼽는다. "공의 궤적 예측이 어렵다", "감아차기가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 "낙하 지점을 헤아리기 힘들다"는 등의 불만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결정적인 순간 슛이 골문 대신 공중으로 치솟는 일이 잦은 것도 자블라니의 책임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과 공인구를 만든 아디다스 측은 미동조차 없다. 자블라니를 연구 개발한 영국 런던 러버러대의 앤디 할랜드 교수는 14일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자블라니는 완벽하다. 선수들이 익숙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개선의 여지가 없기에 해답은 적응뿐. 불편한 친구와 친해지기가 각 팀의 지상 과제다.
퇴장 기로에 선 굉음 유발자
'굉음 유발자' 부부젤라 소리는 선수들에게나 남아공 국민 이외 관중에게나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수천 마리의 벌이 한꺼번에 앵앵거리는 소리 같다. 소리의 크기는 최대 120데시벨(dB)을 웃돈다. 여객기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크기와 같은 수치다. 박지성의 '절친'인 프랑스 대표팀 주장 파트리스 에브라는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0-0 무승부의 원인을 부부젤라 소리로 돌리며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사람들은 오전 6시부터 부부젤라를 불어댄다. 경기 중에는 선수들간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쯤 되자 "남아공 고유의 문화"라며 맞서던 대회 조직위원회 측도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이다. 대니 조단 조직위원장은 14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연주와 장내 안내방송 때 부부젤라 사용을 금지시켰지만, 불만이 계속된다면 또 다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잔디가 너무해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알제리 선수들은 13일 슬로베니아전 0-1 패배 후 잔디를 원흉으로 지목했다. 수비수 마지드 부게라는 "슬로베니아의 골은 천연잔디였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슛"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마지막 바운드가 빨라 골키퍼의 예측이 빗나갔다"는 설명.
알제리-슬로베니아전은 개막 후 처음으로 피터 모카바 경기장에서 펼쳐졌는데, 이 구장은 유일하게 천연잔디와 인조잔디가 함께 깔린 곳이다. 앞으로 18일 프랑스-멕시코, 23일 그리스-아르헨티나, 24일 파라과이-뉴질랜드전까지 3경기가 피터 모카바 경기장에서 열린다. 한국은 적어도 잔디 때문에 골치를 앓을 일은 없는 셈이다.
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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