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95) 할머니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술로 슬픔을 달랬고, 여러 복지시설을 전전하다가 85년이 돼서야 경기 용인시의 한 노인요양원에 정착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남아 있는 기억은 거의 없었다. 자신의 이름마저 생각나지 않았다. 당연히 호적(현 가족관계등록부)이나 주민등록증도 없었다. 노인연금 등과 같은 국가의 복지혜택은 꿈 같은 얘기. 사실상 무국적 상태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이 할머니가 이제는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전국 보호시설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법률구조공단이 벌이고 있는 '성(姓)ㆍ본(本) 창설과 가족관계등록부 만들어주기' 기획소송 덕분이다. 공단과 요양원 등이 도움을 준 결과 이 할머니는 법원에서 성과 본 창설 허가 결정을 받았고, 가족관계등록부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24일, 생전 처음으로 주민등록증도 발급받았다. 태어난 지 90여년 만에 대한민국 국민임을 공식 인정받은 셈이다.
14일 공단에 따르면 2008년 9월부터 시작된 이번 소송의 결과, 올해 3월 현재 음성꽃동네, 파주보육원 등 전국 1,057개 보육원의 722명이 가족관계 등록을 마치는 등 결실을 맺고 있다. 공단 측은 "가족관계 미등록자의 해소는 소외계층의 인권 보호와 복지 증진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전사적으로 가족관계등록 기획소송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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